More is Deeper (2020.11)

More is Deeper

취재 한성옥, 김소연

화려하지 않은 맥시멀리즘 공간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취향을 품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요소에 집중하되 취향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풀어내 거주자의 삶을 꽃피우는 집을 소개한다.

맥시멀리즘의 시대가 돌아오고 있다. 오랫동안 인테리어 트렌드를 지배해왔던 미니멀리즘에 균열을 내는 공간이 하나둘 등장하며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안전을 위해 외부 활동을 최소화해야 하는 상황은 이러한 경향에 더욱 힘을 실었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거를 나만의 스타일로 가꾸고자 하는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원래 맥시멀리즘은 원색 활용, 보색 배합, 과장된 부피감, 과도한 장식성 등 조형 수단을 극대화한 화려한 스타일을 의미하지만 최근에는 조금 다른 결을 드러내 흥미를 끈다. 미니멀리즘이 단지 깔끔한 이미지가 아니라 삶에서 불필요한 요소를 여과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찾고자 하는 가치관의 표현이듯 맥시멀리즘도 고유한 삶의 지향점을 내포한다.
지금의 맥시멀리즘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공간으로, 그 중심에는 확고한 취향이 자리한다. 현대인에게 취향과 취미는 정체성을 쌓는 수단이기에 가장 사적인 공간인 집을 오롯이 자신의 취향으로만 꾸미는 일은 작지만 소중한 자유이자 자아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취향을 듬뿍 담은 집은 작은 물건 하나에도 나만의 스타일이 배어 있고 추억이 서려 있으며 라이프스타일이 묻어난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기념품을 진열해 기억을 되새기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벽마다 예술 작품을 빼곡히 걸어둔다.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다.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즐거울 뿐 아니라 많을수록 깊이가 생기고 그 깊이는 또 다른 여백이 되어 다시 삶을 담는다. 나의 취향, 시간, 내면으로 가득 채운 집은 그 어떤 공간보다 충만하고 풍요로운 나만의 소우주다.


집, 나만의 소우주


Become an Art
THE ART COLLECTOR

How to Play Taste  다양한 수집품을 공간에 디스플레이할 뿐 아니라 인테리어 요소로 활용했다.

Design / ROBBERT DE GOEDE
Location / Amsterdam, Netherlands
Photograph / ROBBERT DE GOEDE

어느 하나 그냥 들인 것 없이, 모든 물건에 저마다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수집은 단순히 물건 축적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과 안목을 다지고 스스로에 대해 이해해가는 행위다. 이는 주거가 자신을 표현하는 공간으로 기능하는 오늘날의 경향과 맞물리는데, 거주자는 자신이 수집한 예술품, 가구, 오브제 등으로 집을 꾸며 자신의 개성을 한껏 표현하고자 한다. 이는 맥시멀리즘을 구현해 풍성한 시각적 자극을 자아내며 단 하나뿐인 주거를 완성한다. 공간에 수집품을 적극적으로 레이어링하는 모습이 나타나며 수집품을 전방위적으로 드러내 풍경을 주도하고, 단순 데커레이션에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테리어 요소로 끌어들여 공간과의 심도 깊은 연계를 꾀한다. THE ART COLLECTOR 프로젝트는 파푸아뉴기니 미술 컬렉션을 수집하는 아티스트의 집이다. 설계를 담당한 ROBBERT DE GOEDE는 미술품, 방패 등 다양한 수집품을 주거 내에 고루 녹여 미술관 같은 집을 완성했다.

내부로 들어서면 너른 공용 공간이 펼쳐지는데, 키가 큰 미술품을 전시하기 위해 매스를 뚫고 창을 내 개방감 있게 표현했다. 여기에 다양한 미술품을 전시함으로써, 창밖의 푸른 자연이 배경이 되며 화사한 햇살이 그림자를 드리워 한층 아름답다. 특히 디스플레이를 넘어 미술품에 강철 지지대를 삽입해 기둥으로 활용한 점에 주목할 만하다. 공간은 미술품의 토테미즘적 무드를 이어 천연 소재와 오크 톤 위주로 구성했는데, 여기에 원색과 기하학적 도형이 돋보이는 그림을 둘러 걸고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스팟 조명을 설치해 분위기를 심화했다. 개인실과 아틀리에를 마련한 2층은 선과 면을 단정하게 정리하고 벽면을 흰색으로 칠해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복도 중앙에 얇은 라인 조명을 시공해 모던하게 연출했으며, 이어지는 공간에 컬러풀한 방패 컬렉션을 전시했다.



Line for Meditation
House of Tranquility

How to Play Taste  여백을 바탕으로 기하학 요소를 활용해 명상적 분위기가 감도는 주거를 완성했다.

Design / TAL GOLDSMITH FISH
Location / Israel
Area / 400㎡
Photograph / Amit Geron

진보하는 세상 속에서 어쩐지 사람들은 자꾸 지쳐간다.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우울증도 흔해졌다. 삶의 평화를 되찾고자 하는 갈망은 외부로 향했던 시선을 내면으로 돌렸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야 함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을 돌보는 삶의 방식을 지향하며 다양한 심리 테라피를 취미처럼 즐기고 있다.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집도 치유의 공간으로 변한다. 고요하고 단정한 방을 만들어 매일 명상을 하고 심리 치료에 근거해 마음을 차분히 다독이는 색으로 집을 물들이는가 하면 향초를 눈 닿는 곳마다 두어 아로마 테라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요소로 둘러싸인 안온한 집은 삶을 그러안는 진정한 보금자리로 거듭난다.

이스라엘의 House of Tranquility는 집 전체를 하나의 명상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프로젝트다. 흰색, 직선, 빛 등 종교 공간의 언어를 들여와 집 안에 성소처럼 경건한 공기가 감도는데, 공간 구조를 기반으로 기하학 요소를 풍부하게 활용해 독특한 미장센을 구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집의 본질을 평온한 휴식으로 바라보고 주거 전체에 명상적 분위기를 구현하고자 한 디자이너가 주목한 공간은 거실이다. 2층까지 통합해 층고가 높고 수풀과 수영장이 있는 정원을 볼 수 있는 커다란 창이 있기 때문이었다.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에서 힘을 빼는 시간을 보내도록 창틀 하단을 목재 좌석으로 계획했으며 내부는 새하얗게 칠한 뒤 아늑한 소파로 간결하게 구성했다.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집 안 곳곳에서 누릴 수 있게 중앙 계단과 거실 사이를 벽 대신 격자형 파티션으로 구획한 감각도 돋보인다. 밝은색 목재 파티션은 6m 높이로 제작해 바닥에서 2층 천장까지 뻗어 올라가며 공간에 압도적 수직감을 심고, 올곧은 직선이 질서정연하게 교차하며 균형감을 빚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중앙을 축으로 완전히 회전하는 방식이라 공간의 개폐감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으며, 격자의 틈이 빛과 공기가 자유롭게 드나드는 길이 되어 집 안을 순환하는 흐름을 만든다. 격자를 통과한 햇살의 무늬는 공간에 독특한 입체감을 입혀 시적인 풍경을 그린다. 거실에서 마음을 보듬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TV는 계단 옆에 별도의 실을 만들어 배치했는데, 이곳 역시 거실과 동일한 파티션으로 구획해 흐름을 이어갔다.



Life Between Reading
도곡 타워팰리스

How to Play Taste   공간 재배치를 통해 거실에 넓은 라이브러리 공간을 마련했다.

Design / 카민디자인
Location / 서울특별시 강남구
Area / 297㎡
Photograph / 카민디자인

주거가 거주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스트리밍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거주자의 라이프스타일에 집중해 각자의 생활 양식, 삶의 주기에 따라 가변적이고 융통성 있는 주거 디자인이 나타나는 것이다. 거주자의 취미 또한 중요하게 고려되는데, 취미를 위해 넓은 공간을 할당하고 통합하는 등 과감한 구조 변경이 눈에 띈다. 최근에는 영화 감상, 독서처럼 정적인 활동부터 암벽등반, 콘서트 같은 역동적인 취미까지 주거에 적극적으로 녹여내는 양상을 보인다.

도곡 타워팰리스 프로젝트는 여가 시간에 함께 모여 앉아 책을 읽는 가족의 취미를 극대화한 주거다. 디자이너는 거실과 이어지는 기존 주방 공간을 넓은 라이브러리 공간으로 바꾸고 공간의 세 면에 붙박이 책장을 시공해 다량의 도서를 진열했다. 책장은 짙은 브라운 컬러로 제작해 중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서가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장을 마련해 편리하다. 여기에 사다리를 놓아 높이 있는 도서를 쉽게 꺼낼 수 있고, 낮은 책장과 소파가 결합된 제작 가구를 매치해 편안하게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그 앞으로 탁 트인 거실이 펼쳐지는데, 책에 집중하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불필요한 가구와 TV를 과감히 생략하고 커다란 소파만으로 구성했다. 책장은 마스터룸까지 길게 이어져 꺾인 구조로 분산된 공간을 시각적으로 아우른다. 디자이너는 책장사이에 마스터룸 문을 내고, 건너편 창가에 단을 조성해 독서 테이블 겸 홈 오피스를 설계하는 등 세심한 공간 활용을 보여준다. 한편 개인실은 휴식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규모를 축소해 아늑하게 연출하고 욕실을 줄여 좁았던 드레스룸을 확대하는 등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대대적 구조 변경이 진행됐다.



Live in Small Jungle
Jalousie House

How to Play Taste   외관에 두 겹의 벽을 겹쳐 틈을 만들고 식물을 식재했다.

Design / LIMDIM HOUSE
Location / Hue, Vietnam
Area / 300㎡
Photograph / Quang Dam

문명이 발달하면서 삶은 자연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어느샌가 자연이 다시 라이프스타일의 중심에 섰다. 자연을 향한 갈망은 본능이기에 도시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조차 산과 바다를 보며 평화를 찾고 숲길을 거닐며 위안을 얻는다. 식물을 기르며 교감하는 일이 취미로 자리 잡아 반려식물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공간 디자인 트렌드에서도 가드닝, 플랜테리어, 정갈로(Jungle+Bungalow), 바이오필리아(Biophilia) 등 식물은 빠지지 않는다.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발코니, 거실, 방 등 곳곳에 화분을 들일 뿐만 아니라 중정을 만들기도 하고 아예 실내에 정원을 조성하거나 집 자체를 대지에 뿌리내린 식물에 맞춰 유기적으로 설계하기도 한다.

베트남의 Jalousie House는 주거 구조에 정원을 참신한 형태로 결합하고 내부에 식물을 끌어 들여 자연과 합일한 풍경을 이루었다. 자신의 사무실 겸 주거를 설계하게 된 디자이너는 집 안 어디서나 식물의 푸르름을 보고 싶었다. 식물로 둘러싸인 집을 만들고자 통풍 장치와 수밀 장치를 겹치는 지역 주거 양식을 재해석해 건물 외부에 두 겹으로 구성된 벽을 설계했으며, 그 사이를 띄워 정원을 조성했다. 지그재그로 접은 모양의 콘크리트 파사드를 덧댄 전면 외관이 인상적인데, 이 파사드는 뜨거운 햇빛을 막아주면서 비가 올 때 공기 순환을 돕는다. 반대편의 벽 시스템도 독창적이다. 속이 빈 블록을 사선으로 배열해 공기와 빛이 원활히 드나들도록 한 것이다. 외부 벽과 내부 유리 벽 사이에 식물을 채워 틈새 정원을 조성했으며 사람이 앉거나 화분을 매달 수 있는 사다리로 층을 경계 짓고 연결해 유기적인 구조를 완성했다. 

정원과 맞닿은 구역에 침실을 배치해 자연에 푹 빠져 쉴 수 있게 한 점도 매력적이다. 내부는 하얀색을 주조로 벽돌, 목재 등 자연스러운 소재를 사용해 식물과 조화를 꾀했다. 특히 욕실은 거친 질감이 도드라지는 석재로 벽을 마감한 뒤 샤워 시설 주변에 돌을 깔고 열대 식물을 풍성하게 들여 마치 작은 정글에 들어온 듯하다.


COPYRIGHT 2020. INTERNI&Decor ALL RIGHTS RESERVED.
[인테르니앤데코 - www.internidecor.com 저작권법에 의거,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