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ment You Want to Go Back - 과거에서 찾은 행복 (2018.8)

The Moment You Want to Go Back
과거에서 찾은 행복


취재  조민희, 신은지

최근 첨단기술의 홍수를 거슬러 투박한 옛 모습 레트로(Retro)가 떠오른다. 패션, 가전, 식품, 자동차 등 우리 생활 속에 레트로 트렌드가 밀려든다. 단순히 옛것을 되살리거나 오래된 것을 파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경제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사회·문화현상 레트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이 촌스러운 디자인이 단순히 팍팍한 현실에서의 탈피라 설명하면 과연 그것으로 충분할까. 레트로는 엄밀히 말해 복고 느낌을 주는 것일 뿐 복고와는 약간 다르다. 복고(復古)는 말 그대로 옛것을 되살린다는 의미인데, 영어 단어로 복원을 뜻하는 ‘Restoration’ 에 가깝다. 반면 레트로는 마케팅 업계와 학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과거의 영광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 을 뜻한다. 즉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양질의 콘텐츠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복고를 넘어서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레트로를 구성하는 요소는 대부분 이미 과거에 탄생한 결과물로 이뤄져 있어 과거의 향수와 정취를 자극한다. 과거의 뒤편으로 사라졌던 옛 문화는 누군가에게는 자라오며 보고 배웠던 익숙한 것일 수도 있지만, 과거 문화가 그 모습 그대로가 아닌 현재의 트렌드를 통해 재해석됨으로써 현대인에게 호기심과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점에서 레트로는 더 이상 잊혀진 문화가 아닌 새로운 유행과 문화의 대표주자로 볼 수 있다. 10년 뒤 지금의 유행이 다시 유행할지 누가 알겠는가. 과거에 대한 회상이 아닌 끝없이 진화하는 새로운 유행과 소비 가치를 이끄는 레트로 감성은 한편으로 다가오는 미래의 거울일지 모른다.


 Reminiscing of History
한국 근현대 생활 · 문화사

한국은 6·25 전쟁이 끝난 이후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 ‘있느냐 없느냐’ 의 차이였을 뿐 ‘좋은 것, 예쁜 것’ 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생계에 초점을 맞추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느라 전통이나 유산에 대해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이러한 절박한 몸부림은 기적 같은 경제 성장을 이룩해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현재 2018년. 한층 풍요로워진 지금까지도 무한경쟁 시대에 살고 있다. 쉴새 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콘텐츠, 앞다투어 출시하는 수많은 브랜드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점령한 지 오래다. 경쟁에 지칠 대로 지친 이를 위로하는 건 ‘추억’ 이다. 인간은 본능에 따라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습성이 있다. 편안함은 익숙함에서 비롯된다. 오래도록 함께하며 눈과 손에 익은 것을 만나면 반갑고 정감이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사를 의식하는 기성세대에게는 힘들고 아픈 기억과 아름다운 추억도 안겨주지만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2030 세대들에게는 ‘새로움’ 과 ‘따뜻하고 정감 있는 디자인’ 이라는 역설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인기를 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레트로 붐은 세대 간의 갈등을 허물고, 서로의 상처를 봉합하는 과정이라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1960년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의 생활문화 연대기를 통해 최근 사람들이 열광하는 역사 속 그때 그 시절의 모습을 추억해보자.


1960년 전통한옥과 온돌
1970년대 이전의 한국인은 거의 전통 한옥에서 살았다. 목재, 황토, 볏짚, 석회 등을 이용해 집을 지었으며, 단열에 강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했다. 방바닥에 돌을 깔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돌(구들)을 달궈 방을 데워 난방하는 구조인 온돌 시스템이 특징이다. 온돌은 방바닥을 고루 덥혀주기 때문에 습기가 차지 않고 화재에도 비교적 안전하다. 한번 뜨거워진 구들장은 오랫동안 방바닥을 따듯하게 해주어 추운 겨울을 아늑하게 지낼 수 있게 해준다.

1967년 미니스커트 유행

1970년 도시 생활의 안식처, 연립주택
이 시대 주거의 특징은 거실 중심의 개방적 구성과 침실의 프라이버시 확보를 위한 폐쇄적 구성의 혼재라 할 수 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연립주택이다. 연립주택은 건물의 전면과 후면에 가구마다 정원과 뜰을 가지며, 이웃 간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지니는 옥외생활이 가능한 저층 주거형식이다. 또 단독주택보다 높은 밀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여러 공동시설도 단지 규모에 따라 적절히 배치할 수 있어 도시형주택으로서 유리한 점이 많다.

1980년 중산층의 지표, 아파트
1960년대 중반 이후 정부는 도시에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고, 농촌에 주택을 개량한다는 주택공급정책을 추진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잠실을 중심으로 서울의 강남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됐다. 3~4명의 가족이 살기에 적합한 아파트는 집 안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또 지하철과 수도권 전철이 개통되면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서울시 교외로 확산됐다. 과천, 목동, 상계동 등이 이 시기 개발된 대표적인 아파트 단지이다. 1980년대 중반에는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등 서울 주변 5개 신도시에서 25층이 넘는 초고층 아파트가 건립됐다.

1984년 휴대전화 등장

1985년 가스 도입으로 인한 주방의 변화
연탄 사용은 1985년까지 48%에 이를 정도다. 1990년 즈음 가스가 보급되고 전기 제품이 일상화되면서 연탄 사용은 줄어들었다. 가스가 보급되자 부엌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먼저 방이나 거실과 분리된 구석진 곳에 있던 부엌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주방’ 이라고 이름을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부엌에 상하수도가 설치돼 공동 우물에 가서 힘들게 물을 길어 오지 않아도 되었고, 입식 부엌이 일반화되면서 주방 가구 전문 업체가 생겨나 주방용품과 조명 등의 실내 장식까지 관심을 끌게 됐다.

1990년 고급주택의 시초, 타운하우스
1990년대 중반부터 주5일제 근무 확산, 소득 수준의 향상 등의 영향으로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주로 도시 인근에 지어져 친환경적이고 조경이 뛰어나며 저층으로 건설되기 때문에 사생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데다, 방범·방재·커뮤니티 시설 등을 갖췄다. 단독주택의 여유로움과 아파트의 편리함을 함께 누릴 수 있으며, 은퇴 후 전원생활을 원하는 고소득층과 개성적인 주거 공간을 원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누렸다.

1994년 인터넷 상용화

2000년 미니멀리즘과 Zen이 만나다
90년대 들어 유행을 주도한 미니멀리즘은 미술, 패션, 인테리어 등의 디자인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간결함을 추구하면서도 따듯하고 부드러움이 살아있는 젠(Zen) 스타일은 한국 주거 인테리어에 큰바람을 일으켰다. 일본 감성이 많이 묻어나는 스타일로 직선적인 요소가 강조되고 동양적인 느낌의 높이가 낮은 장과 탁자가 사용됐다. 컬러는 주로 월넛이나 짙은 브라운 계통에 화이트나 베이지, 그레이 컬러를 더해 중화시키고, 자연 친화적인 대나무나 조약돌, 물과 같은 요소들을 풍부히 활용했다.

2018년 인스타그램과 #핫플
2000년 이후로 지속해서 성장해온 SNS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으로 발전해오며 최근 인스타그램이 절정에 이르러 전 세계적인 소셜 미디어를 대표하고 있다. 사진, 동영상 공유에 특화된 인스타그램을 활용해 트렌디한 인테리어 공간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핫플레이스 해시태그를 달아 공유한다. 사진을 본 사람들은 부지런히 핫플레이스로 발걸음을 옮기고, 또 사진을 찍어 공유한다. 이 끝없이 이어지는 과정은 현대판 입소문으로 볼 수 있으며, 현재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익선동, 을지로 지역에서 다수 이뤄졌다.


오래된 것에 대하여
티하우스 밀월(蜜月)


디자인 / 스튜디오 스테이 건축사 사무소(studio STAY)
시 공 / 스튜디오 스테이 건축사 사무소(studio STAY)
위 치 /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소문로13가길 71
면 적 / 50.16㎡
마 감 / 천장 - 기존 한옥 목구조 복원, 도장
           벽체 - 벽지, 도장, 목재
           바닥 - 타일, 에폭시, 마루
사 진 / 기록사진관·신병민

달콤할 밀(蜜), 달 월(月).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낭만적인 여름밤이 떠오르는 이름 밀월. 성북구에 자리한 티하우스 밀월은 최근 오픈 준비를 마쳤다. 1백여 년의 시간을 지나온 한옥을 리모델링했지만 현대화된 모습이 아닌 본래의 곰삭은 냄새를 풍기며, 시간의 깊이를 오롯이 담은 장소로 마련됐다. 티(茶)가 가지고 있는 정적임과 차분한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 혼자 또는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곳의 정취를 즐기도록 유도했다. 노후화된 한옥의 구조체를 의도적으로 노출하고 그것들이 새로 시공되는 마감재와 만나는 부분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옛것과 새것의 만남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이 오래된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한옥이 품고 있는 시간의 어디쯤을 여행하게 될 것 같은 기분
이다.

기와지붕과 낡은 붉은 벽돌로 이뤄진 밀월의 외관은 높이가 낮은 단층 한옥에 큰 창을 내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패브릭 커튼을 달아 매력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담한 우드 도어 위 MILL WALL이라고 적힌 간판까지 더해져 낡은 한옥이 가진 멋을 감각적으로 배가한다. 뒷마당을 중심으로 ㄷ자 형태를 이루는 한옥은 홀 두 개와 하나의 프라이빗 룸으로 구성됐다. 메인 홀은 심플한 우드 테이블을 두어 한옥과 결을 같이하고 있으며, 바닥에 복고풍의 모자이크 타일을 시공한 덕분에 매력적인 스타일을 선보인다. 기존 천장을 없애고 한옥의 박공지붕이 천장이 되어 오히려 높은 공간감을 지닌다. 지붕의 낡은 서까래 역시 오래된 멋이 주는 하나의 매력으로 자리하며, 한옥이 주는 아늑함을 더욱 느낄 수 있게 한다. 서브 홀은 레트로 풍의 꽃무늬 벽지와 투박한 샹들리에가 눈에 띄는데, 어딘가 촌스러운 듯하지만 자꾸만 머물고 싶어지는 사랑스러움이 묻어난다. 좌식으로 이용하는 프라이빗 룸 역시 같은 꽃무늬 벽지를 가구에 적용하고 천장을 우드로 마감해 정돈되면서 안정적인 모습을 완성했다.



전통이 주는 낭만
SONAI

디자인 / 오알크루(ORCREW), 스페이스 바름
시 공 / 오알크루(ORCREW), 스페이스 바름
위 치 / 부산광역시 연제구 신촌로 29-10
면 적 / 171㎡
마 감 / 천장 - 기존 목구조 위 아트페인팅
           벽체 - 아트페인팅
           바닥 - 스테인글라스 매입 테라조, 원목마루
사 진 / 오알크루(ORCREW)

소나이(SONAI)는 사나이의 제주 방언으로 풍류 소(韶), 잡을 나(拿), 무리 이( ) 자를 사용해 자유로운 식문화를 즐기는 젊은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부산에 위치한 소나이는 제주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으로 전통 해산물과 말고기 육회, 오메기술, 허벅술 등 제주만의 독특한 메뉴 구성으로 부산 젊은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특히 공간 디자인 역시 요즘 주목받는 한국적인 레트로 감성을 표현해 트렌디한 감각을 자랑한다. 한국의 전통 요소를 풍부히 살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개화기 시대로 이동한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가정집으로 쓰이던 낡은 주택의 구조를 재구성한 것으로 기존 천장의 목구조물과 일부 벽면의 빈티지 벽지들을 보존처리 하는 등 세월의 흔적을 최대한 유지함으로써 소나이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수십 년 된 골동품 한약 장과 자개장을 카운터 바와 대형 테이블 등으로 활용하고 시간을 되돌리는 듯한 손때 묻은 병풍, 도자기, 부채 등의 소품을 한껏 장식해 그 시대의 풍요로웠던 한순간을 바라보는 듯하다. 계단으로 이어진 2개의 층으로 구성된 레스토랑의 1층은 화려한 자개장과 다채로운 골동품 오브제들을 배치해 수집과 재해석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뜯어지고 마감이 덜 된 듯한 거친 벽면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빈티지 패턴들 그 앞에 세워진 한약장, 그 위에 전시된 여러 종류의 옛 자기들을 배경으로 테이블에 앉으면 반짝이는 자개 테이블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2층은 온돌 난방의 좌석 공간으로 구성돼 주안상을 차려두고 전통주를 마시는 현시대에 느끼기 어려운 유쾌하고 따뜻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밖에 전라남도에서 디자이너가 공수한 대나무를 포인트 마감재로 사용하고, 제주 전통의 돌하르방, 정낭(대문), 자갈마당이 반기는 입구를 연출하는 등 디테일한 요소를 놓치지 않아 소나이만의 콘셉트가 확실한 공간으로 자리한다.



고즈넉한 살롱으로의 초대
Foi Coffee

디자인 / Studio Mokㆍ도광훈, 김성수
시 공 / Studio Mokㆍ도광훈, 김성수
위 치 / 서울특별시 은평구 연서로29길 30-4 1층
면 적 / 82㎡
마 감 / 천장 - 스테인 합판
           벽체 - 스테인 합판
           바닥 - 타일
사 진 / 판다스튜디오ㆍ이훈구

누구나 한 번쯤 멋들어진 테이블에서 예쁜 찻잔으로 티타임을 즐기는 상상을 해본 적 있지 않은가. 연신내 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한 Foi Coffee(이하 프와 커피)는 개화기 연회장을 연상시키는 앤티크 무드로 고즈넉한 휴식을 선사하는 카페다. 기존 공간을 리노베이션 하는 과정에서 깊고 어두운 동굴을 떠올린 디자이너는 이 점을 모티브 삼아 신비롭고 매혹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고자 했다. 시대 감성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데커레이션을 입히되 단정하면서 모던한 미감을 살려 더욱 멋스럽다. 미로 같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비밀스럽게 숨겨진 프와 커피가 모습을 드러낸다. 입구를 향해 둥글게 굽은 독특한 유리 벽은 행인의 발걸음을 자연스레 안으로 유도한다. 이 벽은 근대 디자인 감성을 자아내는 앤틱한 유리 블록으로 만든 것으로 빛을 머금으면 영롱하게 반짝여 운치를 더한다. 내부에 들어서면 동굴처럼 깊은 공간을 짙은 우드가 아우르며, 은은한 간접 조명으로 안락한 인상을 풍긴다. 고풍스러운 데커레이션 소품을 어두운 톤에 맞춰 조화롭게 연출함으로써 화려한 듯 단아한 한국식 귀족 살롱을 그려냈다. 아울러 우아한 유선형의 천장을 따라 간접 등을 설치해 쭉 뻗은 구조를 살렸으며, 카운터의 뒷벽은 거울로 마감해 공간감을 더욱 깊이 있게 표현했다. 홀 곳곳에 배치한 앤티크 스타일 가구는 앉는 이의 로망을 자극해 우아한 쉼을 꿈꾸게 한다. 볼드한 몰딩 장식이나 스쿠루처럼 꼬인 다리 등 예술적인 디테일을 갖춰 고급스러운 레트로 무드를 완성한다. 또 골드 컬러의 촛대나 페미닌한 레이스 식탁보를 활용해 잘 꾸며진 고저택에 초대받은 느낌을 준다. 묵직한 뉘앙스를 지닌 프와 커피는 디자인 요소가 절묘하게 조화 이뤄 그윽한 레트로 감성을 풍요롭게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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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iniscing of History
서양 근현대 문화 · 예술사

건축가 유현준 교수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에서 건축학을 소주와 와인에 비유해 설명했다. 공장에서 바로 만들어내는 화학주인 소주보다 토양, 기후, 재배한 사람에 의해 맛이 달라지는 포도주 같은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는 것이다. 이 설명은 서양 문화의 거시적인 특징을 탁월하게 비유한 말이다. 고대, 중세, 근대를 거치면서 층층이 쌓아온 문화예술의 역사가 사람들의 삶의 뿌리로 자리한다. 대량 생산에 목적을 두지 않고, 오랜 시간을 거쳐 깊은 맛을 내는 포도주가 가진 특징처럼 서양의 문화 예술은 의식주 해결이 아닌 정신과 철학을 최우선 과제로 두는 고차원적인 행위였다. 세계 1, 2차 세계 대전을 거쳐온 근대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술, 음악, 패션, 영화, 디자인 분야에서의 최고의 자리는 대부분 서양의 차지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켜온 예술의 역사, 인간적 기질을 바탕으로 190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자신들의 문화를 성장시켜왔다.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문화 예술 사조는 어떤 것이 있는지 서양 근대 문화사를 통해 돌아봤다.

1920s Jazz Age - Enjoy the Affluent Society
재즈 시대(Jazz Age)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 재즈와 댄스 음악이 대중화된 1920년대를 말한다. 당시의 미국을 ‘광란의 20년대’ 라고 표현할 정도로 예술과 문화가 풍부하게 융성해 패션, 인테리어 분야에 과감한 장식적 표현들이 시도됐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부터 1939년까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아르데코(Art Deco) 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아르데코 디자인은 경제적 호황과 문화예술의 전성기였던 만큼 부를 과시하는 듯한 화려한 스타일로 이뤄진다. 기하학적 패턴과 블랙과 골드 컬러로 드러내는 고급스러움 그리고 몽환적으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국적인 디자인 요소가 특징이다. 이렇게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번영과 즐거움이 솟구친 재즈 시대 명칭은 작가 F. Scott Fitzgerald의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것으로 작가가 시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는데, 현재 통상적으로 사용한다.

1960s Pop Art - Head to the Progressive Stage
팝 아트의 최초 시작은 영국에서였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크고 소비 측면이 발달한 미국에서 팝 아트는 더욱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이라는 경계에서 진보적이고 광범위한 범위로 뻗어 나갔는데, 텔레비전, 광고, 쇼윈도, 표지판 등 친근한 소재 덕분에 일상생활에 쉽게 유입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Andy Warhol, Roy Lichtenstein이 있으며, 현재도 그들의 작품이 광고나 포스터로 활용된다. 팝아트의 특징은 강렬한 색상 대비, 옵아트의 착시효과, 만화를 활용한 익살스러움, 역동적인 패턴 등으로 볼 수 있다.

1960s Space Age - Dream for the Future
“하늘은 무척 어두웠지만 지구는 파란빛이었습니다.” 1961년 4월 12일, 소련이 보스토크 1호에 탔던 Yurii Gagarin이 지구로 돌아와서 한 말이다. Gagarin의 말이 세계로 퍼져 나가자, 인류는 공상 과학 소설을 읽으며 꿈꾸어 오던 우주여행이라는 환상에 부풀기 시작했다. 이를 의식하듯 1961년 5월 5일 미국은 머큐리 우주선에 앨런 셰퍼드 중령을 태워 14분 47초 동안 유인 우주 비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두 국가의 자존심 싸움 덕분에 1960년대는 인류와 우주가 한층 가까워지는 시대였다. 이에 영감을 받은 1960년대의 디자이너들은 인체공학적(Ergodynamic)이고 유기적인(Organic) 형상의 인테리어 가구와 실내장식 용품을 속속 만들어 냈다. Verner Panton이 역사상 최초로 이음새 없는 플라스틱 의자를 만드는가 하면, 공기를 주입해 부풀려 설치하는 블로우업 가구도 등장해 우주를 연상하는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의 제품들이 출시됐다.

1970s Hard Rock - Shouting at the World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 황금기를 맞은 하드 록은 이름 그대로 일반적 록 뮤직보다 한층 변이된 사운드의 음악을 말한다. 전기 기타의 매우 거칠게 긁어대는 듯한 광폭한 사운드와 드럼 셋트를 때려 부술 듯한 드럼 연주, 울부짖는 보컬을 거대한 음량으로 증폭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1970년대 초반에 등장한 글램 록은 아주 별나게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과도한 머리 모양을 꾸며 반사회적인 모습을 띠었는데, 센세이셔널한 패션과 퇴폐적인 분위기로 인해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당시 팬들은 록 뮤지션을 따라 스터드가 박힌 장 부츠를 신고 자극적인 그림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으며, 젊음이 가진 자유를 과감히 표현했다. 대표적인 뮤지션으로 T. Rax, David Bowie, Gary Glitter가 있으며 여전히 시대의 아이콘으로 남아있다.

1980s Ethnic Look - The Temptation of Folksy Mood
1980년대는 문화ㆍ예술적 측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국가와 국가 간의 뚜렷한 경계가 해체됐고, 서구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제3세계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서구 디자이너들은 주변 문화로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토속적인 문화나 민속복식에서 영감을 받아 에스닉(Ethnic) 디자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일본 디자이너에 의한 일본풍 의상을 시작으로 해 러시아의 코사크 햇, 중국의 치파오, 인도의 사리와 쵸리, 모로코의 하렘팬츠와 터번, 동남아시아의 아오자이와 사롱, 아프리카의 텍스타일과 장신구, 아메리카 대륙 인디언 룩 등 다양한 민속의상들이 복식에 융합됐다. 또 지금은 자칫 촌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청청 패션, 도트 패턴, 어깨에 과도한 패드가 들어간 파워 슈트, 꽉 끼는 하의 등이 이 시대에 태어난 스타일이다.


Pop Art
Paint the Fantasy
Esquire Office

Design / Studio Bipolar
Location / New Delhi, India
Area / 111.48㎡
Photograph / Suryan//Dang

일상 요소를 아트로 승화시킨 팝아트는 작품에 재기 발랄한 위트를 더해 대중적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알기 쉬운 주제와 밝고 경쾌한 원색을 통해 직관적으로 즐기는 이 예술 세계는 다양한 장르와 컬래버레이션돼 지금까지도 대중을 매혹한다. 실제 작품을 활용하거나 특유의 기발한 형태와 색감을 활용하는 등 공간에 유쾌함을 더하는 확실한 방법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트렌디한 미국 남성 잡지 Esquire의 인도 뉴델리 지부 Esquire Office는 공간을 캔버스 삼아 발랄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그려낸다. 디자이너는 세련된 잡지 스타일에 신선한 느낌을 더하고자 ‘교양 있는 광기(Sophisticated Madness)’ 라는 엉뚱한 콘셉트를 세우고, 재미있는 도형 요소와 쨍한 컬러 패턴으로 이미지화해 아티스틱하게 표현했다. 로비를 중심으로 양옆에 사무 공간을 배치한 내부는 알록달록한 컬러 팔레트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피에로가 춤을 출 것 같은 오묘한 분위기는 업무 공간을 넘어 감각을 자극하는 환상적인 체험을 이끈다. 화려한 도형 패턴과 레드, 옐로, 블루의 강렬한 3원색이 어우러져 팝아트 작가 Roy Lichtenstein의 작품을 3차원으로 구현한 느낌을 준다. 로비 한 벽면을 가득 메운 굵직한 스트라이프는 사선으로 기울어 흐르는 듯한 착시 효과를 내는데, 벽 일부를 도려내 만든 듯한 테이블로 초현실주의적 요소를 더했다. 맞은편 바 테이블에는 아치형 프레임에 잡지를 전시해 더욱 감각적이며, 옐로 컬러를 바닥에 길처럼 도장함으로써 독특한 구획 효과를 자아낸다. 사무실의 경우 추상적인 패턴이 그려진 프레임을 파티션 삼아 개방적으로 공간을 분리했다. 특히 파티션에 화려한 컬러 글라스를 사용해 사무 공간을 다채롭게 물들인 점이 돋보인다. 간결하게 구성한 회의실은 은은한 빛을 내는 옐로 글라스로 테이블을 만들어 벽의 패턴이 영롱하게 비치도록 유도했다. 바라만 봐도 즐거운 공간 Esquire Office는 팝아트가 전하는 다이내믹한 컬러의 향연 속에서 환상적인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Hard Rock
For the Every Rock Star
Hard Rock Hotel Shenzhen

Design / CL3 Architects LimitedㆍWilliam Lim, Jane Arnett, Hang Wong, Simon Ho, Him Ng, Roy Lam
Location / Shenzhen, China
Area / 26,690㎡
Photograph / Nirut Benjabanpot

복잡한 생각을 털어내는 파워풀 보이스와 가슴을 뜨겁게 하는 강렬한 사운드. 록 음악은 한때 비주류였으나 터프하고 자유로운 무드로 마니아를 형성하며, 시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 놀랍도록 다이내믹한 음악 세계는 지금도 현대인의 잠든 열정을 자극해 다양한 영역에서 영감의 원천이 된다. 록의 꾸준한 인기를 증명하듯 글로벌 체인을 두고 있는 Hard Rock Hotel이 최근 중국 선전(Shenzhen)에 상륙했다. 이름처럼 록 스피릿이 넘치는 이 호텔은 록의 볼드한 이미지를 창의적인 방법으로 녹여낸 곳이다. 강렬한 컬러와 실루엣을 표현해 마치 놀이 공원같은 풍부한 볼거리를 선사할 뿐 아니라, 시대를 풍미했던 록스타들을 모티브로 삼아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이끈다. 번쩍이는 불빛이 가득한 유리 파사드는 높이가 10m 가까이 되는 로비 공간을 시원하게 드러내 방문객을 압도한다. 영롱한 골드 심벌즈로 만든 거대한 용이 입구에 예술 작품처럼 자리하며, 건물의 밖에서 안으로 이어져 입체적인 인상을 전한다. 절로 환호성이 나오는 화려한 내부는 강인한 블랙으로 공간을 다듬되 원색과 영롱한 메탈 패널을 활용해 콘서트장을 연상케 한다. 좌우로 널찍하게 구성한 리셉션의 경우 백여 개 넘는 기타를 높은 벽에 줄줄이 매달아 콘셉트를 극대화한 점이 돋보인다. 아울러 휴식 공간에 유명 뮤지션 Rihanna의 무대 의상을 전시하거나 악기 케이스를 쌓아 카페를 꾸미는 등 글래머러스한 데커레이션이 이어진다. 호텔의 매력을 집약한레스토랑 Session은 레코드판으로 내부를 가득 채워 독특한 아날로그 감성을 자아낸다. 벽체 곳곳에 맥시멀한 패턴이 흐르는 가운데 비비드한 옐로와 퍼플 컬러로 강렬한 레트로 무드를 완성했다. 

현란한 풍경에 취해 있다 룸으로 올라오면 한결 차분한 톤으로 꾸민 공간이 나타난다. 미드센추리 풍의 룸은 브라운 컬러 주조로 빈티지한 멋을 더하면서 록 음악을 표현한 아트월로 일관성 있게 장식됐다. 록의 자유로운 에너지과 러프한 매력을 예술로 승화시킨 Hard Rock Hotel Shenzhen은 흥겨운 음악을 시각으로 만끽할 수 있는 명예의 전당이자 지상 낙원으로 자리한다.


Jazz Age
Melting in Jazzy Mood
DELVAUX LE 27

Design / Vudafieri Saverino Partners
Location / Boulevard de Waterloo, Brussels, Belgium
Area / 270㎡
Photograph / Santi Caleca

부족한 것 없이 평화롭고 안정적인 시대는 삶의 기쁨을 충실히 느끼도록 만든다. 이는 바로 재즈 시대로, 물질적 부유함뿐 아니라 재즈 선율을 닮은 풍요로운 디자인을 만끽할 수 있었던 시기다. 마치 기억 속에 남은 유토피아처럼 화려한 추억이 자꾸 되살아나기 때문일까. 그 시절을 연상시키는 고풍스러우면서 세련된 데커레이션은 시대를 초월해 꾸준히 사랑받으며, 다채롭게 재현되고 있다.
명품 가죽 제품 브랜드 DELVAUX의 새로운 부티크 DELVAUX LE 27은 클래식과 모던 스타일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쇼룸 겸 갤러리로, 기능적이고 조형적인 아르데코 양식을 더해 독특한 합을 이룬다. 특히 시대 스타일을 답습하지 않고 감각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현대판 재즈 시대를 농밀하게 구현했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우아한 외관은 고풍스러운 몰딩을 그대로 드러내 자연스레 시선을 모은다. 진중한 멋의 격자 프레임으로 꾸민 입구를 지나면 도회적 감성을 입힌 블랙 앤 화이트 컬러의 내부가 나타난다. 2층으로 구성한 실내는 거대한 계단을 중심 삼아 좌우로 나뉘며, 화려한 무늬의 대리석과 장식 요소가 어우러져 대부호의 저택을 거니는 느낌을 준다.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기하학적 직선 요소를 지닌 디스플레이 선반이 추상화처럼 벽을 장식하는데, 이는 고전적인 벽 몰딩과 감각적인 믹스매치를 이끈다. 아울러 Renaat Braem과 같은 20세기 유명 디자이너의 컨템포러리한 가구를 두어 세련미를 자아내고 기본 도형을 맥시멀하게 변주한 조명을 달아 한결 글래머러스하다. 특히 높은 천장을 지닌 스킵 플로어 공간은 큼직한 창 전체를 직선적인 아르데코풍 프레임으로 꾸며 강렬한 이미지를 드러낸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유려한 곡선을 수놓은 난간이 앤티크 감성을 자아내며 콘셉트에 힘을 싣는다. 벽에 걸린 그림에는 예스러운 인물들이 현대 물건을 들고 있어 아방가르드한 위트를 느낄 수 있다. 2층은 1층과 유사하게 구성하되 천장에 선이 아름답게 맞물린 기하학 문양을 그려 아티스틱한 아르데코 스타일로 마무리했다. 정제된 고급스러움으로 가득한 DELVAUX LE 27은 품위가 느껴지는 우아한 무드를 펼치며 재즈 시대의 한 장면 속으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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