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기억을 채집하는 空間
한국 근현대건축의 현재와 미래
취재 김민자
단순히 공간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그 의미를 새롭게 재생산하는 오늘의 근현대건축을 통해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흥미로운 공간을 느껴보자.

공간의 중요한 역할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사람들의 행동, 생각 등을 ‘공간’ 이라는 덩어리 안에 자연스럽게 축적시킨다는 점이다. 이에 특징적인 건축 양식이 전하는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는 공간도 있지만, 당대 사람들의 일상이 머문 공간으로써의 사료적 가치를 지닌 공간 역시 존재한다.
이에 최근 몇 년 사이 일제강점기부터 지어진 근현대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역사적 사건과 결부된 문화재로써의 가치 이전에 건축적 의미, 시대상을 짐작케 하는 생활 양식 등에 초점을 맞춰 옛 것을 향한 짙은 향수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이러한 건축물은 단순히 보존에 방점을 찍지 않고, 역사의 흔적을 보전하면서 복원, 리노베이션을 통해 실질적인 활용 가능성을 높이며, 신구(新舊)의 조화를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밖에도 지역 활성화, 관광객 유입 등의 이해 관계와 맞물려 등록문화재 선정, 정부 지원 사업 등을 통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근현대건축의 인식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편, 지난 8월 8일 김중업박물관에서 열린 건축 컨퍼런스 ‘공간의 재탄생’ 이란 테마 아래 진행된 건축물의 보존과 활용에 관한 강연에서 건축가 최욱은 시간을 간직한 문화 풍경으로써의 건축을 전하며, 지속가능한 변화와 창의적인 해법을 갖춘 보존을 통한 가치창조를 말했다. 그는 서대문형무소, 가파도 프로젝트 등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제도적 개선은 물론, 지역 여론에 따른 입장 차이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밝히며, 옛 것 중에서도 무엇을 남기고 재건할지의 명료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를 통해 축적된 문화적 자산은 마을 공동체 혹은 지역 문화의 가치를 높이며, 경제적 선순환 고리를 만들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까지도 엿볼 수 있었다.
이처럼 지나간 역사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는 것은 물론, 현대적 언어를 내포한 근현대건축의 현재를 살펴보며, 다가올 미래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지.
김중업박물관
운영 / (재)안양문화예술재단
리모델링 / (주)제이유건축사사무소·박제유
위치 /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안양예술공원로 103번길
대지면적 / 16,243㎡
연면적 / 4,596㎡
규모 / 6개동

김중업박물관은 827년 조성된 중초사지 당간지주 및 고려시대 삼층석탑 등의 문화재를 보존하는 동시에 건축가 김중업의 초기작품인 (주)유유산업의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으로, 안양의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오롯이 품은 공간이다. 이에 기능별로 김중업관, 문화누리관, 어울마당, 안양사지관, 문화지킴소, 전망대 등으로 구성되며, 전시, 교육,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해 역사와 문화를 포괄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한다.
먼저, 한국 1세대 건축가인 김중업은 1952년부터 프랑스 르코르뷔지에 건축연구소에서 4년간 수학하며, 모더니즘 건축의 토대를 닦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주한 프랑스대사관, 제주대학본관, 삼일로 빌딩, 서산부인과 등 그만의 건축 조형언어를 담은 한국적 근현대건축의 시작을 알렸다. 이중 1959년 설계된 (주)유유산업의 공장건물은 건물의 구조 체계를 노출시켜 조형적인 효과를 거두려는 건축가의 의도를 찾아볼 수 있다. 이에 (주)유유산업의 사무실의 경우 건물 측면으로 돌출된 기둥과 들보는 내력벽의 의미를 축소시켜 벽체를 유리로 마감해 건물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높여주며, 내부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뿐만 아니라 건물 입면에 국전 조각가 박종배의 모자상과 파이오니상 등의 작품을 설치해 문화유산으로써도 높은 가치를 나타낸다.
한편, 공간 원형을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춘 김중업박물관은 내부의 일부 편의시설을 제외하고, 건축 내외장재 및 구조 등을 그대로 보존해 특유의 정서를 느낄 수 있어 이색적인 경험을 제안한다. 이에 부지 내 가장 큰 규모를 나타내는 문화누리관은 전시 및 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과 함께 옥상정원, 레스토랑, 카페 및 뮤지엄숍을 마련해 주변경관을 조망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또한 건축가 김중업의 도면 및 주요 건축물 모형 등 10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해 그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김중업관은 아담한 2층 규모에 머리를 숙이고 전시실을 들어가야 하는 남다른 스케일을 체험할 수 있다. 이밖에도 어울마당은 굴뚝을 설치해 과거 공장이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를 통해 기존 건물과 교감하는 다양한 설치 작품을 전시하여 부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 되어 방문객의 오감을 만족시킨다.
이처럼 김중업박물관은 우리나라 근현대건축을 이끈 건축가 김중업의 철학과 작업을 되새길 뿐 아니라 안양의 오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의미있으며, 과거와 미래가 어우러지는 문화적 명소로 자리하길 기대한다.
KT&G 상상마당 춘천
운영 / KT&G 상상마당
리모델링 시공 / 미우디자인·장준호
위치 / 강원도 춘천시 스포츠타운길 399번길 25(아트센터), 22(스테이)
대지면적 / 21,530㎡
연면적 / 7,397㎡

춘천 의암호 수변에 자리한 KT&G 상상마당 춘천은 건축가 김수근의 자연주의 공간 미학이 드러나는 춘천 어린이회관을 리모델링해 건축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동시에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1980년 ‘호숫가에 피어나는 끝없는 동심세계’ 를 슬로건으로 삼은 어린이 회관은 2층 규모의 건물과 2,000여 석의 야외음악당을 갖춘 어린이 전용공간으로 춘천에서 개최된 전국소년체전 개막식에 맞춰 문을 열었다. 이에 한 마리의 나비가 산자락에 날개를 펴고 호수로 날아가는 모습을 닮은 건물은 적벽돌을 사용해 친밀감을 주며 주변 건물과 스스럼없이 어우러진다. 또한 ‘노는 사람=어린이’ 라는 본질적인 의미를 문화적 공간에 체화시킨 건축물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해프닝을 개념화해 건물을 설계함으로써, 8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이에 KT&G 상상마당 춘천은 ‘Art Stay’ 라는 콘셉트 아래 아트센터와 스테이 두 건물로 구성되며, 문화 예술을 즐기며 배우고 꿈을 이루기 위해 머무는 공간으로써 창작자의 예술활동과 일반인의 문화향유를 제공하는 새로운 터전으로 자리한다. 특히 복원 작업을 맡은 미우디자인의 장준호 대표이사는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본래의 느낌을 충실히 살리고 싶었다고 밝히며, 건물 노후에 따른 설비 교체, 시설 편의 외에 좌우 대칭형 구조, 빙 둘러싼 아담한 콘서트 공간, 붉은 벽돌 등 공간의 원형을 살리는 것에 집중했다고 전했다. 대표적으로 건축물 상층부에 만든 불규칙한 형태의 창 너머 자연광이 스미는 구조를 그대로 살려 건축가 본래의 의도를 전하면서 공간적 감응을 일으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음악을 중심으로 한 전문적인 프로그램 및 공간을 마련한 아트 센터는 실내외 공연장, 라이브 스튜디오, 연습실과 함께 뮤지션 지원 사업 S.around(써라운드)를 통해 음반 녹음 및 공연 등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갤러리, 디자인숍, 문화예술교육실을 갖춰 지역 예술가와 연계한 전시 및 기발한 디자인 상품을 소개해 다양한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밖에도 강원도 체육회관을 리모델링한 스테이는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공간으로, 약 200여 명이 머물며 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숙박시설과 음악, 공연, 예술 연습실 및 컨벤션 시설을 구성해 아트센터와 연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KT&G 상상마당 춘천은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 보존을 통해 역사성을 계승하면서도 현대 문화 예술이 숨쉬는 장소로써 새롭게 자리하며, 어린이의 꿈과 희망을 품었던 옛 춘천 어린이회관의 잔영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해 춘천의 랜드마크로 발돋움하길 기대한다.
한국근대문학관
설계 / (주)건축사사무소 바인·황순우
설계팀 / 김찬영, 전혜영
위치 / 인천광역시 중구 해안동 2가 7번지
대지면적 / 1,064.4㎡
건축면적 / 771.9㎡
연면적 / 1,601.94㎡
규모 / 지하 1층 ~ 지상 3층
구조 / 철근 콘크리트조, 철골조

인천 중구 일대는 일제강점기 당시 건립된 근대건축물과 개항장 특유의 분위기로 인해 다국적 도시 경관이 잘 보존된 지역으로, 물건을 보관하던 창고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근대문화유산의 보전 및 지역 활성화 방안을 연계해 쇠락하는 도심을 회복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신포시장에서 차이나타운에 이르는 거리를 거점지역으로 설정한 뒤 지난 2009년 인천 아트플랫폼을 선보였으며, 최근 인문학플랫폼인 한국근대문학관을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물류창고, 김치공장 등으로 활용되었던 한국근대문학관 건물은 1892~1941년 사이 만들어진 창고 건축물을 사용한 것으로, 로비, 기획전시실, 상설전시실, 다목적실로 이뤄져 당시 중요한 문학작품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건축가는 작업에 앞서 120여 년의 세월 동안 사회변화에 대응한 결과물로써, 단순히 공간을 재생하는데 그치지 않고 긁힌 벽돌, 녹슨 철물, 덧바른 몰탈 등 고유의 흔적을 남긴 건축물 곳곳을 살펴보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가듯 본래의 구조를 찾아 시간의 재생까지 고려했다. 이에 창고의 특성을 보여주는 트러스와 벽돌, 철제 소재의 창과 문을 보존하고, 건물과 건물 사이 두 개의 좁은 통로와 차에 긁혀 파도처럼 너울치는 벽을 그대로 두어 배치의 공간성을 자연스럽게 나타냈다. 또한 경사지에 석축을 쌓은 대지는 지형적 특성상 늘 습하고 축축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는데, 불법으로 증축된 건물을 비우고 숨겨져 있던 석축을 드러내 땅의 호흡을 이끌었다. 기본적으로 도로와 필지의 원형이 비교적 잘 유지된 인천 개항장지구의 특성을 반영해 필지를 통합하지 않고도 기획전시실과 상설전시실, 연구실의 동선을 연결하는 유리 직육면체의 육중한 형태를 상쇄시키기 위해 작은 창고 형태로 일부를 더해 매스를 분절시키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건물 철거 당시 별도로 보관해둔 벽돌을 재사용하고, 목재를 다듬어 천장을 마감하는 등 근대적 소재 고유의 물성을 살린 거친 형태의 보수 방식을 택하면서도 기와와 동일한 색상의 징크판과 투명한 유리 소재를 매입해 근대와 현대의 시각적 조우를 맛볼 수 있다. 이외에도 벽면 개구부를 통한 다양한 프레임은 내외부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공간 전체에 하나의 서사를 형성하는 동시에 작은 공간임에도 자연의 세세한 변화를 포착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돋보인다.

이처럼 한국근대문학관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도시에서 재편되는 삶의 양식과 공간의 기능을 담아내며, 거칠지만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정거장처럼 잠시 머무는 공간이 아닌 소통과 공유의 공간으로 뜨거운 생명력을 나타낸다.
목인헌
설계 / 서울시립대학교·이충기
시공 / 이안건축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동 9-541
대지면적 / 151.8㎡
건축면적 / 51.3㎡
연면적 / 75.6㎡
규모 / 지상2층
구조 / 조적조, 목조
외부마감 / 드라이비트, 아스팔트 싱글지붕
내부마감 / 수성페인트, 투명에폭시
사진 / 노경

서울 이화동의 역사는 1958년, 일제강점에서 해방된 후낙산 성곽과 이화장 사이 서쪽 사면에 수십 채의 현대식 타운하우스가 들어서며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한다. 당시 주택영단(주택공사의 전신)의 주도하에 자체 기술로 지은 신식 2층 집인 국민주택은 30~45°에 이르는 가파른 경사지를 따라 높은 축대와 골목이 만들어낸 독특한 풍경 덕택에 특유의 마을 분위기를 형성했다. 하지만 수도 및 연탄보급이 어려운 산동네만의 특성을 드러내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로 변해갔고 무한히 확장되는 서울의 팽창 속도처럼 거의 모든 집들이 면적과 높이를 임의로 확장하고 증축하면서 골목 외에 빈 땅이 없을 정도로 빽빽한 밀도를 나타냈다.
이후 2006년에 시작한 공공디자인사업을 통해 벽화마을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얻으며, 1960년대의 분위기와 오버랩 된 이색적인 풍경 속에 외지인과 외국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기 시작했다. 한때 재개발 조합이 결성되기도 했지만 이화동에만 존재하는 시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며, 2012년부터 마을 보존과 발전을 위한 다채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의미 있는 행보를 선보였다. 이중 목멱과 인왕이 보이는 집이라는 뜻의 목인헌은 2층 구조에 단열없이 블록 한 장으로 벽을 쌓고 ㅗ자형 지붕틀에 박공지붕을 구성해 초기 국민주택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설계를 맡은 이충기 교수는 “건축가의 디자인이 매순간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목인헌의 리노베이션은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설계와 디자인의 비중이 크고 기존 공간을 들어내고 덧붙이는 선택과 결정이 많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고 밝히며, 어느 정도의 개입이 적정한 수준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야 했다고 한다.
이에 신축 이후 이루어진 임의 증축 공간을 들어내고, 원형을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된 작업은 새 것과 옛 것, 시간의 표현을 위한 마감재와 색, 새로운 기능, 경관, 마을을 구성하는 풍경인자로서의 자세와 대응을 고민하는 것이 주요했다. 내부는 1958년 당시 사용한 목재가 60여 년의 시간을 거치며 뒤틀리고 틈이 생기는 과정 속에서 온순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50년대 생산된 시멘트블록의 벽체와 목재의 껍질도 벗기지 않은 채 사용했던 목조 지붕틀을 통해 이 집이 지닌 시간의 가치를 극대화 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이렇듯 목인헌은 당대 사회적 흐름에 의해 형성된 마을 풍경을 보존하며, 단순히 벽화마을 이화동이 아닌 역사의 일상성을 간직한 공간으로서의 이화동 속에서 오래도록 서울의 풍경으로 남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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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기억을 채집하는 空間

한국 근현대건축의 현재와 미래
취재 김민자
단순히 공간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그 의미를 새롭게 재생산하는 오늘의 근현대건축을 통해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흥미로운 공간을 느껴보자.
공간의 중요한 역할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사람들의 행동, 생각 등을 ‘공간’ 이라는 덩어리 안에 자연스럽게 축적시킨다는 점이다. 이에 특징적인 건축 양식이 전하는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는 공간도 있지만, 당대 사람들의 일상이 머문 공간으로써의 사료적 가치를 지닌 공간 역시 존재한다.이에 최근 몇 년 사이 일제강점기부터 지어진 근현대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역사적 사건과 결부된 문화재로써의 가치 이전에 건축적 의미, 시대상을 짐작케 하는 생활 양식 등에 초점을 맞춰 옛 것을 향한 짙은 향수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이러한 건축물은 단순히 보존에 방점을 찍지 않고, 역사의 흔적을 보전하면서 복원, 리노베이션을 통해 실질적인 활용 가능성을 높이며, 신구(新舊)의 조화를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밖에도 지역 활성화, 관광객 유입 등의 이해 관계와 맞물려 등록문화재 선정, 정부 지원 사업 등을 통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근현대건축의 인식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편, 지난 8월 8일 김중업박물관에서 열린 건축 컨퍼런스 ‘공간의 재탄생’ 이란 테마 아래 진행된 건축물의 보존과 활용에 관한 강연에서 건축가 최욱은 시간을 간직한 문화 풍경으로써의 건축을 전하며, 지속가능한 변화와 창의적인 해법을 갖춘 보존을 통한 가치창조를 말했다. 그는 서대문형무소, 가파도 프로젝트 등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제도적 개선은 물론, 지역 여론에 따른 입장 차이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밝히며, 옛 것 중에서도 무엇을 남기고 재건할지의 명료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를 통해 축적된 문화적 자산은 마을 공동체 혹은 지역 문화의 가치를 높이며, 경제적 선순환 고리를 만들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까지도 엿볼 수 있었다.
이처럼 지나간 역사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는 것은 물론, 현대적 언어를 내포한 근현대건축의 현재를 살펴보며, 다가올 미래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지.
김중업박물관
운영 / (재)안양문화예술재단
리모델링 / (주)제이유건축사사무소·박제유
위치 /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안양예술공원로 103번길
대지면적 / 16,243㎡
연면적 / 4,596㎡
규모 / 6개동
김중업박물관은 827년 조성된 중초사지 당간지주 및 고려시대 삼층석탑 등의 문화재를 보존하는 동시에 건축가 김중업의 초기작품인 (주)유유산업의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으로, 안양의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오롯이 품은 공간이다. 이에 기능별로 김중업관, 문화누리관, 어울마당, 안양사지관, 문화지킴소, 전망대 등으로 구성되며, 전시, 교육,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해 역사와 문화를 포괄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한다.
먼저, 한국 1세대 건축가인 김중업은 1952년부터 프랑스 르코르뷔지에 건축연구소에서 4년간 수학하며, 모더니즘 건축의 토대를 닦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주한 프랑스대사관, 제주대학본관, 삼일로 빌딩, 서산부인과 등 그만의 건축 조형언어를 담은 한국적 근현대건축의 시작을 알렸다. 이중 1959년 설계된 (주)유유산업의 공장건물은 건물의 구조 체계를 노출시켜 조형적인 효과를 거두려는 건축가의 의도를 찾아볼 수 있다. 이에 (주)유유산업의 사무실의 경우 건물 측면으로 돌출된 기둥과 들보는 내력벽의 의미를 축소시켜 벽체를 유리로 마감해 건물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높여주며, 내부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뿐만 아니라 건물 입면에 국전 조각가 박종배의 모자상과 파이오니상 등의 작품을 설치해 문화유산으로써도 높은 가치를 나타낸다.
한편, 공간 원형을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춘 김중업박물관은 내부의 일부 편의시설을 제외하고, 건축 내외장재 및 구조 등을 그대로 보존해 특유의 정서를 느낄 수 있어 이색적인 경험을 제안한다. 이에 부지 내 가장 큰 규모를 나타내는 문화누리관은 전시 및 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과 함께 옥상정원, 레스토랑, 카페 및 뮤지엄숍을 마련해 주변경관을 조망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또한 건축가 김중업의 도면 및 주요 건축물 모형 등 10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해 그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김중업관은 아담한 2층 규모에 머리를 숙이고 전시실을 들어가야 하는 남다른 스케일을 체험할 수 있다. 이밖에도 어울마당은 굴뚝을 설치해 과거 공장이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를 통해 기존 건물과 교감하는 다양한 설치 작품을 전시하여 부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 되어 방문객의 오감을 만족시킨다.
이처럼 김중업박물관은 우리나라 근현대건축을 이끈 건축가 김중업의 철학과 작업을 되새길 뿐 아니라 안양의 오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의미있으며, 과거와 미래가 어우러지는 문화적 명소로 자리하길 기대한다.
KT&G 상상마당 춘천
운영 / KT&G 상상마당
리모델링 시공 / 미우디자인·장준호
위치 / 강원도 춘천시 스포츠타운길 399번길 25(아트센터), 22(스테이)
대지면적 / 21,530㎡
연면적 / 7,397㎡
춘천 의암호 수변에 자리한 KT&G 상상마당 춘천은 건축가 김수근의 자연주의 공간 미학이 드러나는 춘천 어린이회관을 리모델링해 건축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동시에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1980년 ‘호숫가에 피어나는 끝없는 동심세계’ 를 슬로건으로 삼은 어린이 회관은 2층 규모의 건물과 2,000여 석의 야외음악당을 갖춘 어린이 전용공간으로 춘천에서 개최된 전국소년체전 개막식에 맞춰 문을 열었다. 이에 한 마리의 나비가 산자락에 날개를 펴고 호수로 날아가는 모습을 닮은 건물은 적벽돌을 사용해 친밀감을 주며 주변 건물과 스스럼없이 어우러진다. 또한 ‘노는 사람=어린이’ 라는 본질적인 의미를 문화적 공간에 체화시킨 건축물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해프닝을 개념화해 건물을 설계함으로써, 8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이에 KT&G 상상마당 춘천은 ‘Art Stay’ 라는 콘셉트 아래 아트센터와 스테이 두 건물로 구성되며, 문화 예술을 즐기며 배우고 꿈을 이루기 위해 머무는 공간으로써 창작자의 예술활동과 일반인의 문화향유를 제공하는 새로운 터전으로 자리한다. 특히 복원 작업을 맡은 미우디자인의 장준호 대표이사는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본래의 느낌을 충실히 살리고 싶었다고 밝히며, 건물 노후에 따른 설비 교체, 시설 편의 외에 좌우 대칭형 구조, 빙 둘러싼 아담한 콘서트 공간, 붉은 벽돌 등 공간의 원형을 살리는 것에 집중했다고 전했다. 대표적으로 건축물 상층부에 만든 불규칙한 형태의 창 너머 자연광이 스미는 구조를 그대로 살려 건축가 본래의 의도를 전하면서 공간적 감응을 일으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음악을 중심으로 한 전문적인 프로그램 및 공간을 마련한 아트 센터는 실내외 공연장, 라이브 스튜디오, 연습실과 함께 뮤지션 지원 사업 S.around(써라운드)를 통해 음반 녹음 및 공연 등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갤러리, 디자인숍, 문화예술교육실을 갖춰 지역 예술가와 연계한 전시 및 기발한 디자인 상품을 소개해 다양한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밖에도 강원도 체육회관을 리모델링한 스테이는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공간으로, 약 200여 명이 머물며 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숙박시설과 음악, 공연, 예술 연습실 및 컨벤션 시설을 구성해 아트센터와 연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KT&G 상상마당 춘천은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 보존을 통해 역사성을 계승하면서도 현대 문화 예술이 숨쉬는 장소로써 새롭게 자리하며, 어린이의 꿈과 희망을 품었던 옛 춘천 어린이회관의 잔영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해 춘천의 랜드마크로 발돋움하길 기대한다.
한국근대문학관
설계 / (주)건축사사무소 바인·황순우
설계팀 / 김찬영, 전혜영
위치 / 인천광역시 중구 해안동 2가 7번지
대지면적 / 1,064.4㎡
건축면적 / 771.9㎡
연면적 / 1,601.94㎡
규모 / 지하 1층 ~ 지상 3층
구조 / 철근 콘크리트조, 철골조
인천 중구 일대는 일제강점기 당시 건립된 근대건축물과 개항장 특유의 분위기로 인해 다국적 도시 경관이 잘 보존된 지역으로, 물건을 보관하던 창고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근대문화유산의 보전 및 지역 활성화 방안을 연계해 쇠락하는 도심을 회복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신포시장에서 차이나타운에 이르는 거리를 거점지역으로 설정한 뒤 지난 2009년 인천 아트플랫폼을 선보였으며, 최근 인문학플랫폼인 한국근대문학관을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물류창고, 김치공장 등으로 활용되었던 한국근대문학관 건물은 1892~1941년 사이 만들어진 창고 건축물을 사용한 것으로, 로비, 기획전시실, 상설전시실, 다목적실로 이뤄져 당시 중요한 문학작품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건축가는 작업에 앞서 120여 년의 세월 동안 사회변화에 대응한 결과물로써, 단순히 공간을 재생하는데 그치지 않고 긁힌 벽돌, 녹슨 철물, 덧바른 몰탈 등 고유의 흔적을 남긴 건축물 곳곳을 살펴보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가듯 본래의 구조를 찾아 시간의 재생까지 고려했다. 이에 창고의 특성을 보여주는 트러스와 벽돌, 철제 소재의 창과 문을 보존하고, 건물과 건물 사이 두 개의 좁은 통로와 차에 긁혀 파도처럼 너울치는 벽을 그대로 두어 배치의 공간성을 자연스럽게 나타냈다. 또한 경사지에 석축을 쌓은 대지는 지형적 특성상 늘 습하고 축축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는데, 불법으로 증축된 건물을 비우고 숨겨져 있던 석축을 드러내 땅의 호흡을 이끌었다. 기본적으로 도로와 필지의 원형이 비교적 잘 유지된 인천 개항장지구의 특성을 반영해 필지를 통합하지 않고도 기획전시실과 상설전시실, 연구실의 동선을 연결하는 유리 직육면체의 육중한 형태를 상쇄시키기 위해 작은 창고 형태로 일부를 더해 매스를 분절시키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건물 철거 당시 별도로 보관해둔 벽돌을 재사용하고, 목재를 다듬어 천장을 마감하는 등 근대적 소재 고유의 물성을 살린 거친 형태의 보수 방식을 택하면서도 기와와 동일한 색상의 징크판과 투명한 유리 소재를 매입해 근대와 현대의 시각적 조우를 맛볼 수 있다. 이외에도 벽면 개구부를 통한 다양한 프레임은 내외부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공간 전체에 하나의 서사를 형성하는 동시에 작은 공간임에도 자연의 세세한 변화를 포착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돋보인다.
이처럼 한국근대문학관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도시에서 재편되는 삶의 양식과 공간의 기능을 담아내며, 거칠지만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정거장처럼 잠시 머무는 공간이 아닌 소통과 공유의 공간으로 뜨거운 생명력을 나타낸다.
목인헌
설계 / 서울시립대학교·이충기
시공 / 이안건축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동 9-541
대지면적 / 151.8㎡
건축면적 / 51.3㎡
연면적 / 75.6㎡
규모 / 지상2층
구조 / 조적조, 목조
외부마감 / 드라이비트, 아스팔트 싱글지붕
내부마감 / 수성페인트, 투명에폭시
사진 / 노경
서울 이화동의 역사는 1958년, 일제강점에서 해방된 후낙산 성곽과 이화장 사이 서쪽 사면에 수십 채의 현대식 타운하우스가 들어서며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한다. 당시 주택영단(주택공사의 전신)의 주도하에 자체 기술로 지은 신식 2층 집인 국민주택은 30~45°에 이르는 가파른 경사지를 따라 높은 축대와 골목이 만들어낸 독특한 풍경 덕택에 특유의 마을 분위기를 형성했다. 하지만 수도 및 연탄보급이 어려운 산동네만의 특성을 드러내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로 변해갔고 무한히 확장되는 서울의 팽창 속도처럼 거의 모든 집들이 면적과 높이를 임의로 확장하고 증축하면서 골목 외에 빈 땅이 없을 정도로 빽빽한 밀도를 나타냈다.
이후 2006년에 시작한 공공디자인사업을 통해 벽화마을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얻으며, 1960년대의 분위기와 오버랩 된 이색적인 풍경 속에 외지인과 외국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기 시작했다. 한때 재개발 조합이 결성되기도 했지만 이화동에만 존재하는 시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며, 2012년부터 마을 보존과 발전을 위한 다채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의미 있는 행보를 선보였다. 이중 목멱과 인왕이 보이는 집이라는 뜻의 목인헌은 2층 구조에 단열없이 블록 한 장으로 벽을 쌓고 ㅗ자형 지붕틀에 박공지붕을 구성해 초기 국민주택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설계를 맡은 이충기 교수는 “건축가의 디자인이 매순간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목인헌의 리노베이션은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설계와 디자인의 비중이 크고 기존 공간을 들어내고 덧붙이는 선택과 결정이 많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고 밝히며, 어느 정도의 개입이 적정한 수준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야 했다고 한다.
이에 신축 이후 이루어진 임의 증축 공간을 들어내고, 원형을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된 작업은 새 것과 옛 것, 시간의 표현을 위한 마감재와 색, 새로운 기능, 경관, 마을을 구성하는 풍경인자로서의 자세와 대응을 고민하는 것이 주요했다. 내부는 1958년 당시 사용한 목재가 60여 년의 시간을 거치며 뒤틀리고 틈이 생기는 과정 속에서 온순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50년대 생산된 시멘트블록의 벽체와 목재의 껍질도 벗기지 않은 채 사용했던 목조 지붕틀을 통해 이 집이 지닌 시간의 가치를 극대화 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이렇듯 목인헌은 당대 사회적 흐름에 의해 형성된 마을 풍경을 보존하며, 단순히 벽화마을 이화동이 아닌 역사의 일상성을 간직한 공간으로서의 이화동 속에서 오래도록 서울의 풍경으로 남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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