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우고 행복을 채우다 (2017.09)

마음을 비우고 행복을 채우다

취재 조민희

세상이 변하는 속도를 쫓아 트렌디함을 추구하지만, 한편으로 과거의 감성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바쁜 삶 못지않게 여유로움을 추구하는 휘게 라이프를 담은 공간이 떠오른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최선을 다해 사는 시대는 갔다. 화려한 도심에서 반복된 일상을 살기보다 한 번뿐인 인생을 최대한 즐기며 살자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휘게(Hygge)라이프다.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붐비고 시간에 쫓겨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휘게 라이프는 동경의 대상이다. 효율이 최우선 과제로 여겨지는 도시의 삶에 지친 이들이 휘게를 통해 내려놓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것이다.
휘게 라이프는 단순히 산수 문제처럼 명쾌하게 떨어지는 정답이 있지 않다. 그렇지만 새것보다 오래된 것, 자극적인 것보다 은은한 것, 빠른 것보다 느린 것을 추구하며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지는 소박한 일상을 휘겔리(Hyggeligt)하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리빙 공간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한적하고 조용한 공간에서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 그림책을 넘겨보는 여유.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나의 안정적인 정서를 위한 시간을 보내는 휘겔리한 공간은 상상만으로도 평화롭다. 편안하게, 함께, 따뜻하게 그리고 천천히. 삶의 결에 깃든 행복의 페이지를 넘겨본다.


Oriental Beauty Yi She Mountain Inn.
Time to Be Artists Hide Out
Transcend Time ŠTAJNHAUS
Symphony of Empty and Fill Minimal Life





Oriental Beauty
Yi She Mountain Inn.

Architects / DL Atelier·Liu Yang, Sun Xinye, Lu Xuwen, Zheng Limei
Location / Beijing, China
Area / 660㎡
Photography / Sun Haiting

깊은 산 속에서의 캠핑을 즐기는 건축가는 복잡한 도시의 삶을 뒤로한 채 자연 속 쉼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래서 만들어진 Yi She Mountain Inn.은 세컨드 하우스 겸 게스트 하우스로 베이징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명나라 황릉(Ming Dynasty Tombs) 근처에 위치해 도시와 완전히 분리됐다. 건축가는 이곳에서 도심의 경쟁 시스템에서 벗어나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길 바랐다. 심지어 산속에 고립된 듯한 기분까지 들지만 푸른 하늘을 지붕 삼아 삶의 진정한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전원생활을 위한 농촌 주택이나 여름철 휴가를 위한 호텔도 아니다. 오로지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을 취하는 곳이라 건축가는 강조했다.


단층의 거실, 침실 등이 중앙의 안뜰을 중심으로 연결돼 있으며, 직선과 유선형의 조화와 적절히 여백을 사용해 동양의 미학이 두드러진다. 화이트 벽돌을 바탕으로 짙은 나뭇결의 우드가 자연의 미감을 살린다. 실내로 통하는 우드 단으로 중정과 실내를 자연스레 분리했으며, 단 위에 앉아 별을 보거나 바람을 쐬기도 한다. 비교적 경쾌한 공간인 주방은 타일과 우드 소재의 대비 효과가 두드러져 현대식 고택을 연상케 하고 침실과 거실은 어두운 조명과 단조로운 브라운 계열의 컬러로 배색해 안정적이고 나른하다.
각 실에 가느다란 우드 막대기를 이어 가벽을 세워 아늑함을 살리는가 하면 천장을 가로지르는 거친 표면의 대들보, 곳곳에 세워진 듬직한 나무 기둥으로 한결 자연과 가까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 옥상에 잔디를 깔고 의자를 두어 일찍이 지는 해를 바라볼 수 있게 했는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자연의 요람에 갇힌 듯 편안하다.




Time to Be Artists
Hide Out

Architects / Dan Brunn Architecture
Location / Los Angeles, United States
Area / 334㎡
Photography / Brandon Shigeta

DC 코믹스의 커버, Prada, ESPN의 그래픽 디자인으로 유명한 비주얼 아티스트 James Jean이 사는 주거 레노베이션 프로젝트다. LA의 리틀 오사카(Little Osaka)에 위치한 Hide Out은 독특한 재료의 건물로 유명한 건축가 Frank Gehry가 1970년대 지은 집이다. 건축가는 Frank Gehry의 기본 골격은 살리면서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갤러리 하우스를 완성했다.


Gehry 건축의 특징인 미니멀리즘과 조형적 요소가 조화를 이루고, 소재의 특징을 최대한 끌어내는 홈 스튜디오는 먼저 계단에서 시선을 뺏긴다. 직접 제작한 월넛 계단은 반복되는 부메랑 형태로 난간 벽을 세워 수직성은 낮추면서 공간감은 높이는 흥미로운 시도를 꾀했다. 전체적으로 그림을 전시하도록 화이트 벽면으로 채워 심플한 스타일을 연출하면서도 공간 구분을 위해 비스듬히 세운 벽면, 천장을 채운 직사각형 LED 조명, 사색을 즐기는 우드 큐브 등 과감한 스케일의 구조가 돋보인다. 이는 단순히 의식주를 해결하는 곳이 아닌 머무는 이가 공간을 이동하며 색다른 경험을 겪도록 의도했다.


특히 일본식 정원과 이어지는 우드 큐브는 이 공간이 예술가의 아지트라는 콘셉트의 방점을 찍는다. 클라이언트의 작업 스튜디오에 머물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책을 보거나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쉼터로 만들어준 큐브는 정원과 이어져 평온하고 아늑하다.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Hide Out’ 할 수 있는 클라이언트의 비밀 통로를 표현하기 위해 사면 모두 단단한 우드로 감싸져 더욱 비밀스럽다. 일반적인 직육면체 모양이 아닌 사다리꼴로 정원 쪽으로 점점 좁아지는 형태를 띠는 덕분에 자연광이 직접 쏟아지지 않고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큐브와 하나의 공간처럼 마주 보고 있는 책장에 또 다른 비밀 장치가 숨겨져 있는데 중앙 사각형 판을 내리면 침대가 등장한다. 비스듬한 벽을 통해 거실과 구획한 큐브 공간은 필요에 따라 서재에서 게스트 룸이 되는 완전한 다목적실로 손색이 없다. 한편 꺾어지는 리듬감이 멋스러운 계단을 따라 2층으로 가면 명상을 할 수 있는 미니 정원이 있다. 사방을 유리 벽으로 세워 마치 인큐베이터처럼 꾸민 이곳은 자연 채광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버전의 휴식 공간이다.




Transcend Time
ŠTAJNHAUS

Architects / ORA·Jan Hora, Barbora Hora, Jan Veisser
Location / Mikulov, Czech Republic
Area / 121㎡
Photography / BoysPlayNice·Jakub Skokan, Martin Tůma

16세기경 만들어진 문화기념물 건물 ŠTAJNHAUS는 미쿨로브(Mikulov)의 옛 유대인 강제 구역(Ghetto)에 위치했다. 지난 수년간 불이 나거나 세계 전쟁을 겪어오며 상당한 피해를 보고 숱한 재건축과 개조를 반복해왔지만, 여전히 중세의 디자인을 유지한 점이 큰 특징이다. 바로크와 르네상스 스타일을 결합한 코어 건축의 형태로 문화·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국립 역사 보존법(National Historic Preservation Act)하에 관리되고 있다. 건축가는 무엇보다 역사적인 요소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으며, 그간 개조된 스타일과는 다른 ORA만의 디자인을 심으려 노력했다. 그 결과 오랫동안 숨겨져 왔던 개구부와 돌계단을 발견하는가 하면 벽돌 마감과 천장의 회반죽 장식을 찾아내 건물의 원래 모습을 구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특히 이 건물은 직선으로 뻗은 사각 면 없이 굴곡으로 표현돼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요소를 알맞게 측정해 적용하는 점이 어려웠다.


ŠTAJNHAUS의 한 층은 클라이언트의 집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한다. 각 객실은 모두 다른 스타일로 꾸며져 유니크한 분위기를 자랑하며 유대인이 살았던 특색을 최대한 살려 더욱 특별하다. 십자 라인이 특징인 아치형의 천장과 유대인을 상징하는 ‘다윗의 별’ 모양 조명 장식 덕분에 마치 중세 박물관에 온 듯하다.
그리고 천장이나 벽면을 터서 확장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해 가파른 박공과 비대칭 도어를 만들어 중세시대의 흔적을 현대적으로 표현했다. 직선 면이 없으므로 대부분의 가구는 아치형으로 둥근 실루엣을 그리며, 블랙 컬러 프레임으로 포인트를 살려 모던 클래식 스타일을 꾀했다.


한편 공용 공간인 주방과 욕실은 보다 밝은 분위기를 위해 레트로 타일로 바닥을 시공했는데 부드러운 우드 소재와 대비를 이루며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 몇 년간 방치 상태로 있던 지하의 와인 셀러도 원래 용도를 되찾았다. 처음 만들어졌던 그대로 남아있는 붉은 벽돌의 아치형 천장은 시간의 흔적을 오롯이 지녀 고풍적이다.




Symphony of Empty and Fill
Minimal Life

Design / CREATIVE STUDIO UNRAVEL·김현종, 신다영
Location / 67, Seobinggo-ro, Yongsan-gu, Seoul, Korea
Area / 116㎡
Photography / CREATIVE STUDIO UNRAVEL·한성훈

잘 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워낸 공간을 잘 채우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클래식 공연 기획사 대표인 클라이언트는 미니멀 스타일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원했다. 평소 다양한 음악 무대를 꾸미던 클라이언트는 공간을 ‘무대’ 로 봤을 때 자신의 무대는 꼭 필요한 것만 있는 실용적인 공간이 되길 바랐다. 그렇게 탄생한 Minimal Life는 채우기 위해 비운다는 의미를 여실히 보여준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디자이너는 우선 10년 된 아파트의 오랜 요소를 덜어냈다. 기존 체리색 몰딩과 비효율적인 동선을 탈피하기 위해 집 안의 벽지를 뜯어내고 석고 보드로 마감한 후 친환경 페인트를 칠했다. 또 유광 강마루는 무광의 밝은 회색 타일로 대신하고, 오프 화이트 톤을 주조색 삼으면서 명료한 직선의 미학을 강조했다. 거실의 선반, 서재의 수납장, 주방 가구, 드레스 룸의 옷장 등 모두 맞춤 제작해 완벽하게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미니멀 라이프을 표현했다.
마치 미팅룸을 연상케 하는 널찍한 거실은 주방과 연결돼 다이닝 공간으로 활용되며 직선 형태의 가구와 만나 더욱 세련되고 날카로운 매력을 지녔다. 주방은 불필요한 날개 벽을 철거해 아일랜드 식탁을 두었는데, 주방 가구의 네이비 컬러 마감이 모던한 인상을 전한다.


한편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자 했던 남편을 위한 서재는 현관 통로 쪽의 문을 막고 베란다 창 쪽으로 입구를 내 뻔한 구조를 탈피한 점이 흥미롭다. 또 디자이너의 센스가 돋보이는 안방은 드레스 룸과 공간을 구획하는 스테인리스 벽을 세워 별다른 소품 없이 벽 자체로 장식의 효과를 낸다.
또 안방 안쪽으로 이어지는 파우더 룸과 욕실 역시 선이 만드는 깔끔한 형태만 잡아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을 자랑한다. 욕실의 수납장과 샤워기 등도 말끔하고 깔끔한 아이템으로 선택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스타일을 선사한다.



COPYRIGHT 2017. INTERNI&Decor ALL RIGHTS RESERVED.

[인테르니앤데코 - www.internidecor.com 저작권법에 의거,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