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in Autumn Palette - 가을 머금은 집 (2020.10)

Home in Autumn Palette
가을 머금은 집

취재 한성옥

여느 때였다면 짧은 나들이든 긴 여행이든 떠났을 가을이 왔지만 올해는 창 너머로 타오르는 단풍을 지켜보는 일이 최선이다.
우울해지기 쉬운 계절, 집에 가을빛을 들여 나에게 새로운 기분을 선물해 보자.

들판엔 황금빛 물결이 너울거리고 아름드리 나무에는 과실이 영글고 하늘은 한없이 새파란 날들. 기억 속 가을의 풍경은 이처럼 풍요로웠고 우리 마음도 덩달아 넉넉해지곤 했다.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왔지만 올가을을 맞이하는 마음은 지난해와 같지 않다. 숨 돌릴 만하면 다시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와 연이은 자연재해에 시달리며 사람들은 완전히 지쳐버렸다. 이처럼 내면의 여유를 잃었을 때 우울에 빠져 있기보다는 내 마음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면 어떨까.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르는 집을 새롭게 스타일링하면 기분을 확실하게 환기할 수 있다. 특히 가을 정취를 듬뿍 담은 집은 불안하고 위태로운 하루에 따뜻하고 환한 빛을 드리운다.
공간에 계절을 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색이다. 가을이 되면 따스하고 부드러운 색에 눈길이 가게 마련인데, 답답함과 두려움이 만연한 올가을에는 안식과 희망을 희구하는 심리가 색으로 표출돼 이러한 색조에 더욱 힘이 실린다. 잃어버린 일상을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은 뉴트럴 톤의 온도를 높이고, 어스 톤도 한층 풍부해져 깊은 안락함을 선사한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간절함 역시 색을 통해 발현한다. 밝고 화사한 파스텔 톤으로 침체된 오늘을 격려하고 내일을 꿈꾸는 것이다. 전보다 차분하게 조율한 색감은 이질감을 중화해 가을 감성에 한결 잘 어울린다. 클래식 블루를 비롯한 원색도 단단하고 강렬한 특성을 심화해 안정감과 경쾌함을 발산하며, 모노 톤은 포인트 컬러나 소재 조합으로 색다른 존재감을 과시한다. 가을의 색이 선사하는 위안은 이처럼 다채롭다. 우울한 마음을 위로하고 밝은 미래를 불러올 가을빛 완연한 집을 소개한다.



Serene Earth

흙, 나무, 풀과 같은 자연의 색을 본뜬 어스톤은 무의식 속 근원성을 자극해 본질적 평온을 선사한다. 최근에는 기본 색에 윤기를 더해 불안에 시달리는 마음을 푸근하게 감싸 안는 경향이 눈에 띈다. 흙색은 대지의 안정감을 품어 가장 주목받는 색으로 떠올랐으며 사막을 연상시키는 디저트 미스트, 브레이브 그라운드 등의 색이 거칠고 소박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힘을 전한다. 잔잔한 색감으로 공간의 바탕을 이루는 미색과 베이지는 아몬드 오일, 버터크림, 시프 스킨, 토니 버치 등으로 섬세하게 색조를 조율해 넉넉한 포용성을 드러낸다. 테라코타와 러스트는 색이 자연스럽게 흐르며 그윽한 정서를 더하고 파이어드 브릭, 번트 헨나 등 붉은 계열의 색을 포인트로 활용하면 계절감을 한층 강조할 수 있다.


Peace from Nature
Hygge Studio

우리를 둘러싼 색은 본디 자연에서 왔다. 자연이 간직한 색은 풍부하고 무한하며 이를 닮은 어스 톤의 컬러 팔레트 역시 다채롭다. 또한 갖가지 색이 당연하다는 듯 어우러지는 자연의 풍경처럼 어스 톤의 다양한 색들도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공간에 한 가지 색만 입히기보다는 과감한 배색을 시도해보자. 농밀한 색이 완벽하게 맞물리며 더 깊은 정신적 풍요를 선사할 것이다.

Design / Melina Romano
Location / Sao Paulo, Brazil
Area / 68㎡
Photograph / MCA Estúdio·Denilson Machado

북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라이프스타일 ‘휘게(Hygge)’ .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 일상의 여유를 즐기는 이 삶의 방식을 모토로 설계한 Hygge Studio는 공간이 줄 수 있는 행복을 고민한 결과물이다. 아늑한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어스 톤을 활용했는데, 다채로운 색을 폭넓게 사용하면서 강약을 조절해 공간에 입체성을 부여하는 한편 질감, 형태를 섬세하게 매만지고 수수한 소품을 더해 현대적이면서도 목가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바닥은 테라코타 세라믹으로, 벽면은 흙색 벽돌로 감싸 내부를 통일감 있게 아울렀으며 평면을 개방적으로 계획해 답답함을 걷어냈다. 침실은 마감재의 색을 이어가면서 온도를 한 단계 높인 브릭 레드 컬러 침대로 구심점을 잡았는데 헤드보드를 길게 연장해 너른 품에 안긴 듯한 안온함을 느낄 수 있다. 헤드보드 한쪽에 책 선반을 설치하고 슬링백 의자를 배치해 취향이 가득 묻어나는 공간이 완성됐다. 미색으로 꾸민 거실은 소박함과 모던함의 조화가 인상 깊다. 쪼개진 듯한 나무 의자와 간결한 형태를 띤 벽난로 등을 세심하게 배치해 균형감을 이끌어냈는데, 벽면에 설치된 스크린이 공간에 개성을 더한다. 장식적 구멍이 있는 블록 Cobogó로 만든 스크린은 빛과 그림자를 아름다운 음영으로 흘려 보내 일상의 휴식에 예술적 감성이 스며든다. 

주방 역시 투박한 배경에 세련된 가구를 매치했으며, 식탁 한쪽은 조리대와 결합하고 다른 쪽은 밧줄로 천장에 연결해 양면적 매력을 강조했다. 한편 올리브 그린으로 포인트를 준 욕실과 계단은 마른 나뭇가지와 푸른 식물을 함께 엮은 조경을 더해 어스 톤 고유의 자연미를 풍성하게 발화한다.



Calm Pastel

솜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듯 달콤한 파스텔 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말랑말랑해 지지만 밝은 이미지 때문에 봄과 여름에 주로 쓰이던 이 색이 가을의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어두운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는 심리가 부드럽고 산뜻한 색으로 이어진 것이다. 채도를 낮춘 더스티 파스텔과 그레이시 파스텔로 가을에 걸맞은 차분함을 이끌어내면서도 특유의 낙관성을 유지해 온화하고 산뜻한 장면을 연출한다. 파스텔 톤을 대표하는 핑크는 피치 누가처럼 엷은 페일 톤부터 절제미가 느껴지는 로즈 탄, 더스티 핑크, 카바레, 블러싱 핑크 등으로 결을 달리해 다양한 이미지를 제안한다. 민트 역시 폭넓은 팔레트를 보여주는데 신비롭고 미래적인 네오 민트, 은은함이 깃든 미스티 제이드, 시원한 그린 애시 등이 공간에 청량감을 불어넣는다.


Lovely Link
Up Side Down House

클래식하지만 모던하게, 내추럴하지만 세련되게. 상반된 이미지의 조합은 언뜻 당혹스럽게 들리지만 잘 구현하면 비범한 매력을 보여줄 수 있다. 익숙한 스타일을 매치해 제3의 매력까지 이끌어내고 싶다면 파스텔 톤에 주목하자. 부드러우면서도 생동감 있는 색이 상이한 분위기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매끄러운 흐름을 형성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특히 색조를 담담하게 가라앉힌 파스텔 톤은 현대적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며, 형태가 간결할수록 더 빛을 발한다. 특유의 잔잔한 색감은 목재를 비롯한 자연 소재와의 어울림도 좋아 전방위적 활용이 가능하다.

Design / Collective Works
Color Design / KOI Colour Studio
Location / United Kingdom
Area / 175㎡
Photograph / Margaret M. DeLange

빅토리아 시대 주거에 새로운 표정을 입힌 Up Side Down House는 파스텔 톤의 무한한 가능성을 읽을 수 있는 프로젝트다. 공간 본래의 고전미를 살리면서도 북유럽 출신 클라이언트의 모던한 취향도 충족해야 했는데, 파스텔 톤을 영민하게 안배해 스타일의 접점으로 삼았다. 정원과 다락까지 포함해 4층으로 구성된 주거는 좁고 어두운 단점을 극복하는 일이 최우선이었다. 디자이너는 먼저 지붕에 창을 내 햇살을 최대한 유입한 뒤 주방, 거실, 서재 등 구역마다 각기 다른 파스텔 컬러를 칠해 밝고 화사한 숨결을 불어넣었다. 클래식한 첫인상으로 맞이하는 입구는 초록색 벽면에 질감을 표현해 빈티지한 뉘앙스를 고조했다. 창 너머로 정원이 보이는 주방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 건물에 남아있던 벽돌의 소박한 매력을 뒷받침 하기 위해 느릅나무 베니어를 매치하고 노란색으로 바탕을 감쌌는데, 톤을 낮춘 노란색이 투박한 자재와 어우러져 따스한 울림을 빚는다.

위층에 자리한 서재는 파스텔 톤, 목재, 모던한 디테일이 한층 유연하게 교감해 완벽한 합을 이루는 공간이다. 담담한 핑크 컬러가 벽난로, 책장 등 목재가구와 순조롭게 맞물리며 빅토리아 시대 장식 요소의 고전미를 부드럽게 살리는 한편 간결한 디자인에는 생기를 더한다. 이어지는 거실은 주방보다 농밀한 노란색을 입혀 안락한 은신처로 조성했으며 위층에 위치한 침실과 작업실은 벽면과 천장에 톤 인 톤 배색을 시도해 발랄하게 마무리했다.



Luxury Mono

검은색, 회색, 흰색으로만 이루어진 모노톤은 세련된 이미지를 대표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색다른 아늑함을 발견할 수 있다. 단순하지만 명료하고 정돈된 느낌이 불안함과 어지러움을 배제해 심리적 안정을 선사하는 것이다. 또한 모노 톤에 글래머러스한 뉘앙스를 가미하면 풍요로운 분위기가 깊이 있는 평온함을 불러온다. 하얀색에 온기를 더한 웜 화이트, 회색이 한 방울 스며든 듯한 제트 스트림은 순수한 색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의 면면을 보여주며, 검은색을 강렬하게 풀어낸 블랙 오닉스, 잉크웰은 고혹적 감각을 일깨운다. 트라버틴 그레이, 얼티밋 그레이, 슬릿 등 다양한 회색은 견고하고 신뢰감이 가면서도 긴장을 풀어줘 공간을 편안하게 다독인다.


Glamorous Shelter
Scalpellino House

올가을에는 모노 톤의 전혀 다른 얼굴을 만나보자. 깔끔하고 중후하지만 때로는 단조로웠던 모노 톤에 포인트 컬러를 더하면 도회적이면서도 가을 특유의 충만함이 물씬 풍기는 주거를 연출할 수 있다. 공간의 바탕에 검은색이나 회색을 입히고 골드, 실버 등의 컬러를 심으면 영롱한 빛이 강조돼 고급스럽고 때로는 우주처럼 환상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또한 한 가지 색이라도 목재, 석재, 금속 등 소재를 다양하게 변주해 상이한 표정을 드러내면 모노 톤을 풍성하게 전개할 수 있다.

Design / Biasol
Location / Melbourne, Australia
Area / 280㎡
Photograph / Timothy Kaye

호주의 Scalpellino House는 검은색을 중심으로 소재와 포인트 컬러를 감각적으로 조율해 모노 톤의 스펙트럼을 확장한 프로젝트다. 가업을 물려받아 석공으로 일하는 클라이언트는 현대적이고 안락하면서 자신의 작품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주거를 원했다. 이에 공간 전반은 검은색으로 감싸되 다양한 석재와 목재를 조합해 물성의 대비를 강조함으로써 특색 있는 고급스러움을 연출했다. 검은색 진입로와 출입문으로 공간 분위기를 암시한 외관은 청석을 가미해 무거운 느낌을 희석했다. 청석은 내부의 벽과 계단으로 이어져 안과 밖에 연속성을 부여한다. 길게 확장한 주방은 디자인 테마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인데, 한쪽 벽에 검은색 목재 수납장을 배치하고 그 앞에 Cosmic Gold 화강암으로 만든 조리대를 배치해 동일한 색에서 전혀 다른인상을 이끌어냈다. 매끄러운 검은색에 금빛이 은하수처럼 흐르는 Cosmic Gold는 자칫 부담스러울 수 있는 포인트 컬러를 자연스럽게 품어 화려한 멋이 은은히 배어 나온다. 

주방과 일렬로 구성한 다이닝 공간은 콘셉트를 연장하며 벽면 상단 수납장에 목재와 화강암을 맞붙여 시각적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거실 역시 소재 조합을 유지하되 회색 러그와 소파를 배치하고 핑크색 벨벳 소파로 포인트를 주어 편안한 분위기가 감돈다. 파우더 룸과 욕실은 무늬가 다른 대리석으로 마감해 차별화를 꾀했는데, 산산이 조각난 듯 거칠고 역동적인 무늬를 지닌 Concordia 대리석을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도록 시공한 파우더 룸이 극적 공간감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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