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세계 - The Metaverse (2021.8)

다시 만난 세계
The Metaverse

취재 신은지

익숙하지만 이름 없던 시스템들이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메타버스라는 개념 아래에서다. 낯설게 다가올지 모르나 우리는 이미 그 안에서 살고 있다. 메타버스는 1992년 미국 SF작가 Neal Stephenson의 소설 <Snow Crash>에 처음 언급된 개념으로 소설 내에서는 메타버스가 아바타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가상세계를 의미한다. 가공·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인데, 넓게 해석하면 단순히 아바타에 자신을 투영하는 것뿐 아니라 온라인 매체를 거쳐 가상세계로 접근하는 일련의 활동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포켓몬을 잡거나 SNS에 브이로그를 올리고 원격 수업과 회의를 진행하며 온라인 게임을 하는 일 모두 우리가 이미 메타버스의 인류임을 증명한다. 가상세계가 적극적으로 현실세계에 편입되기 시작하면서 메타버스는 더욱 창조적인 개념으로 일상의 패러다임을 뒤바꾼다. 특히 현실의 제약을 벗고 상상을 실현하는 메타버스에서는 공간도 현실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현실세계에서 물리 요소를 갖춘 공간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인간을 안전하게 보호하며 한정된 땅 위에서 기능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원초적 역할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물리적 환경의 제약이 없는 가상 세계에서는 그 의미와 역할이 달라진다. 지금은 현실을 본떠 가상세계에서도 학교나 사무실을 지어 소통하는 일이 많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상 공간에 기대하는 바는 극대화될 것이다.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공간적 체험을 이루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3D그래픽을 핵심 요소로 두어 메타버스 건축가를 떠오르는 직업으로 꼽기도 하며, 디지털 세상 속에서도 오리지널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대체불가토큰인 NFT 체계로 공간을 구축하는 등 가상세계로 뛰어든 공간 디자인은 기존의 개념을 완전히 뒤엎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가상세계는 현실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수단만이 아니다. 그 자체로 분명한 목적과 기능을 가진 하나의 세계다. 현실에 판타지를 더하는 증강현실, 개인의 일상을 확장하는 라이프로깅, 세상을 이전하는 거울세계에 이어 완전히 새로운 차원을 구축한 가상세계가 나타나고 있다. 동시에 상상을 뛰어넘는 가상세계를 다시 현실에 물리적으로 구현할 기술 역시 발달하면서 메타버스의 공간은 더 큰 가능성을 가지게 됐다. 메타버스 시대를 맞이해 공간 디자인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아울러 주목할 만한 이슈는 무엇인지 알아보며 미래를 맞이할 인사이트를 키워본다.




Read the Issue

메타버스는 현대인의 일상에 뛰어들어 삶의 방식과 가치 기준을 새롭게 재편하고 있다. 최근 떠오르는 메타버스 이슈를 살피며 사회의 주요한 흐름을 읽어보자.


1_감각을 차별화하는 증강현실
증강현실(AR)은 현실의 이미지나 배경에 3차원의 가상 이미지나 영상을 겹쳐 보여주는 기술이다. 검색, 촬영, 길 안내 등 다양한 정보를 직관적이고 몰입력 있게 전달해 일상을 편리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point_서울미디어아트 프로젝트
코엑스 아티움 외벽에 선보인 미디어아트 ‘정중동(靜中動), 동중동(動中動)’ . 점차 색이 달라지며 움직이는 전통 오브제가 입체로 나타나는데 거리 곳곳에 8가지 QR코드를 부착해 관람자의 손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관람하게 했다.


2_유머러스한 비대면 소통법
강의도 회의도 모두 가상의 아바타로 이루어진다. 이제 화면 너머 작은 캐릭터에 자신을 투영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특히 게더타운처럼 게임 요소를 실무에 접목하는 게이미피케이션 기술은 온라인에 기반을 둔 최근 소통 방식에 색다른 재미를 더한다.

point_메타폴리스
직방이 개발한 국내 최초 메타버스 협업 툴 메타폴리스. 오피스 환경을 3D 게임처럼 구축하되 실제 공간처럼 제한된 물성을 부여해 집중도를 높였다. 가상 공간에 아바타가 출근하는 방식이며 책상에 앉아 시선을 마주하면 화상이 연결돼 생동감도 뛰어나다.



3_삶을 펼치는 제2의 생활공간
화면 너머의 나 역시 진짜다. 단순히 현실의 활동을 보조하는 수단으로서가 아닌, 화면 너머에 구축된 세계를 탐험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제2의 삶을 즐기는 시대가 도래했다.

point_제페토
아바타로 가상세계에서 소통하며 놀이, 쇼핑, 업무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기는 플랫폼. 최근 현대자 동차가 업계 최초로 제페토에서 차량을 구현해 시승하게 하는 등 브랜드 홍보의 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4_다른 차원에서 만나는 문화예술
NFT는 디지털 작품에 확실한 소유의 개념을 부여해 최근 미술계를 비롯한 생활 전반에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해외 마켓 플레이스에서는 이미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국내에서도 kakao를 비롯한 업체들이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point_The Genesis
프린트베이커리의 NFT 기반 디지털아트특화브랜드 eddysean이 메타버스 전시 The Genesis를 개최했다. 첫 번째 민팅(Mint)한 작품이 전시되며 메타버스와 연결된 마켓 플레이스를 통해 원하는 작품을 소장할 수 있다.

5_가상세계에서 태어난 자아
모델, 아이돌, 그리고 배우에 이르기까지.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 국내 여러 브랜드의 모델로 발탁돼 존재감이 두드러지는데, 캐릭터 설정뿐 아니라 전체 세계관을 짜임새 있게 구체화해 실제 인간처럼 친근하고 매력적인 이미지로 다가가는 중이다.

point_버추얼 AI 로지
신한라이프는 업계 최초로 광고에 버추얼 모델을 내세웠다. MZ 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얼굴형을 모아 탄생한 인플루언서 로지는 음악과 안무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Meet the Designer

메타버스는 머나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오늘 이곳에 도래해 있다.
자유롭게 확장하는 메타버스 세계는 우리의 일상과 공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메타버스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마주한 공간 디자이너 3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주변에서 가상세계에 대한 개념을 자주 접하는가.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 IT 기업들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미래에 대한 여러 고민에 공감할 수 있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만들고 이를 심화하기 위해 기술 및 콘텐츠 기업과 협업 준비를 시작하면서였다. 그 중심에는 항상 메타버스가 자리했으며, 이 개념을 통해 사람 간 연결의 밀도가 변화하기 시작한점에 주목했다.

메타버스와 사람 간 연결의 밀도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온라인상에서 사람의 관계를 끌어올리는 것은 가상환경이 주는 몰입도와 정서감에 달렸다. 다양한 IT 계열 프로젝트를 통해 온라인 플랫폼은 결국 사람 간 소통을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감각을 살리는 기술력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연결되면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은 더욱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

메타버스에 관한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활용해본 적 있는지 궁금하다.
2015년 공들이던 프로젝트가 실현되지 않았을 때, 완벽하게 구성된 3D 공간 데이터의 활용 방안을 고민한 적이 있었다. AR 게임이 구현되기 시작한 때였는데, 프로젝트의 3D 데이터를 온라인상 위치로 두고 실제 사이트에서 건축을 휴먼 스케일로 경험하면 멋진 비즈니스가 탄생할 거라 기대한 것이다. 아쉽게도 당시에는 하드웨어 모바일 환경이 프로젝트를 뒷받침해주지 못했으나 AR, VR, 위치 기반 서비스 등 첨단 기술이 공간의 미래와 인류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2016년에 진행한 프로젝트에는 위치 기반의 아카이빙 시스템을 도입했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사진을 찍으면 위치 기록이 저장되는데, 해당 장소에 재방문해 시스템을 작동하면 과거의 추억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가상 공간과 현실 공간을 연결하려고 했던 프로젝트로 기억에 남는다.

가상세계 관련 프로젝트가 더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업계 내 전문가 양성도 중요한 이슈로 작용하겠다.
공간은 시간성을 바탕으로 한 매체의 의미와 기능을 원활하게 표현한다. 모형이나 그림처럼 한 시점에 고정된 형태만으로는 건축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이런 관점에서 건축과 공간을 시간이 포함된 매체로 표현하는 데 집중한 해외 건축학교들이 존재하며 대표적으로 영국 런던 UCL의 Bartlett school of architecture가 있다. 학생들은 소설, 영화, 게임, 만화 등 시간을 기반으로 한 매체에 내 러티브를 담아 건축과 공간을 설명한다. 이 같은 학교는 미래 공간 환경을 다양한 관점으로 표현하며 가상환경이 필요한 산업의 전문가를 배출해내고 있다.

앞으로 메타버스가 현실 공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은 과거에서 현재까지 모든 유형 시스템의 기본 전제다. 미래에도 이러한 전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물리적·시간적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온라인에 과거보다 더 밀접하게 연결되며 각종 클라우드 시스템, AI처럼 상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하드웨어 솔루션이 메타버스 플랫폼에서의 삶을 더욱 자연스럽게 드러낼 것 같다.

메타버스 속에서 공간 개념과 라이프스타일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하는가.
메타버스는 인간에게 다중 세계를 제시하고 그 세계들을 연결했다. 하나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던 현실 환경과 다른 레이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큰데, 최근 많은 이들이 경험 자체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인식의 변화를 이루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주어진 환경의 제약을 신경 쓰기보다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해 메타버스가 구현하는 새로운 삶을 즐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공간 디자이너로서 메타버스를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가. 아울러 앞으로 진행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설명 부탁한다.
기술 변화가 가져다준 삶의 변화는 우리가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보다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현상인 것 같다. 새롭게 주어진 환경이 유토피아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고민은 분명 필요하다. 이러한 인식 범위 안에서 공간 디자이너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현재 대외비이긴 하지만 메타버스에 관한 프로젝트도 시작한 상태다.


주변에서 가상세계에 대한 개념을 자주 접하는가.
메타버스 개념은 공간 디자이너들에게 그리 생소한 것이 아니다. 공간 디자이너들은 이미 현실에 기반을 둔 가상 공간을 다양한 시뮬레이팅 방법으로 구현해왔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떠오르는 메타버스 이슈는 새로운 기술과 시대적 흐름에 따라 표현 방법이 자연스럽게 진화한 것으로 여겨진다. 코로나19가 메타버스의 진화를 앞당기긴 했지만 재난상황이 없었더라도 머지않아 적극 구현되었을 기술이라 확신한다.

메타버스에 관한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활용해본 적 있는지 궁금하다.
최근 기술이 적용된 가상세계 시스템은 아니지만 2018년도에 롯데와 진행한 ON AND THE LIVING 프로젝트에서 메타버스 개념을 적용한 경험이 있다. 다양한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공간이었는데 거주지 주소를 터치스크린에 입력하면 시뮬레이팅을 거친 3D 공간이 출력돼 실제 거주 공간을 실감나게 경험할 수 있었다. 특히 가상 공간에 다양한 가전제품을 설치해 사이즈를 비교해보거나 인테리어와의 조화를 즉각적으로 확인하게 하는 등 당시에는 새로운 개념의 상업 공간이었다. 가상 공간이 핵심 프로그램을 도맡았기에 현장에서는 상담과 시뮬레이팅 영역 위주로 규모 있게 배치해 효율적인 매장 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다.

앞으로 메타버스가 현실 공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는가.
메타버스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말 그대로 물리적 공간이 가진 한계를 없앤다는 점이다. 특히 일상생활을 뒷받침해주던 주거의 성격이 더 극적으로 변화할 것 같다. 일례로 원격수업이나 강의의 질이 한결 높아져 실제 강의실 같은 환경을 구축하거나 동료가 바로 곁에 있는 듯한 현장감을 자아내면 집에서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 제일 편리하지 않을까. 아울러 효율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거라 생각한다. 실질적 공간 디자인 현장에서 설명하자면 시공 시 완벽한 사전 시뮬레이팅을 통해 오차 폭이나 실수를 격감할 수 있으며, 이는 공기와 단가를 낮추어 프로젝트의 원활한 진행을 이끌 것이다.

반대로 메타버스의 한계점 또한 분명히 존재할 것 같다. 공간 디자인 측면에서 고민해 본다면.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언어를 통해 도출되는 공간 요소는 가상 공간에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을 듯하다. 현실 공간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의외로 예측 불가능한 요소들이다. 예를 들어 바로 옆에 앉은 동료의 말투나 숨소리, 컨디션 등이 때로 자신의 업무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처럼 공간은 공간을 구성하는 여러 특징에 의해 유연하게 변화된다. 또 직접 대화를 통해 얻는 정보와 가상현실을 거쳐온 정보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뉘앙스와 감정, 분위기 등에서 표현력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간을 결정하는 수많은 예측 불가의 요소들은 가상과 현실의 분명한 구분점이 된다.

공간 디자이너로서 메타버스를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가. 아울러 앞으로 진행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설명 부탁한다.
최근 메타버스에 관한 용어가 쏟아져 나오고 있고, 심지어 가까운 미래에 메타버스에 기반을 둔 공간 디자인이 현재 공간 디자인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때문에 이를 직업으로 삼은 입장에서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고 또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태도를 ‘어느 정도’ 만 가지고 있다. 공간 디자인은 단순히 컬러와 마감재, 공간의 배치 등 단편적인 부분을 다루는 분야가 아니다. 가상현실에서는 다룰 수 없는, 말이나 글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부분까지 디자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시각, 청각, 후각 등의 감각은 메타버스라는 개념으로도 충분히 표현 가능하나 사용자를 위한 휴머니즘과 이타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디자인, 나아가 여기에서 비롯되는 공간의 기운, atmosphere, 氣 같은 부분은 기술의 발전만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산이라는 영역을 가상으로 온전히 느낄 수 없듯, 숙련된 디자이너가 작업한 프로젝트의 이미지를 보는 것과 실제 공간을 경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메타버스는 아직 공간 디자인을 위한 효율적 표현 방법에 가까우며, 공간 디자인의 가장 핵심적 역할을 대체하기까지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메타버스를 공간 디자인의 한 과정으로 받아 들이고 편의성과 효율성 측면을 적극 활용하며 흐름을 따라가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가상세계에 대한 개념을 자주 접하는가.
2018년 봄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 플레이어 원>이라는 SF 영화를 봤다. 그때는 그저 재미있게 봤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현실화되는 과정을 접하면서 그 흐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사회 전반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스튜디오 내부적으로 분기별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 1/4분기 강의 주제가 ‘메타버스’ 였다. 개발자분을 모시고 가상세계의 개념과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Z세대가 왜 열광하는지, 그리고 이 산업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생태계와 세계관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접하면서 이해의 폭을 키웠다.

메타버스와 현실 공간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면.
가상 시스템이 현실 공간에 미치는 영향은 기존 가치의 상실과 새로운 가치의 발현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볼 수 있다. 메타버스에서는 어떤 환경이나 인물을 새롭게 만들고 없애는 과정이 현실보다 극도로 간략해졌으며 시간과 비용도 크게 절감된다. 가상 공간의 창조가 무척 쉬워진 만큼 현실 공간도 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동시에 메타버스와 함께 성장해가는 개인의 멀티 페르소나가 현실 공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삶의 과정을 천천히 축적하며 살아온 과거의 개인에 비해 오늘날 많은 이들은 자아실현을 위해 자신을 여러 명으로 나누어 부가적 캐릭터를 생성하는 등 정체성의 극적인 변화를 자처한다. 멀티 페르소나를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을 빠르고 가볍게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처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에 삶이 투영된 공간 역시 자연스럽게 변화하지 않을까 싶다. 가치 인식 과정이 기존에는 좁고 깊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오늘날에는 넓고 얕은 방식으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인데, 멀티 페르소나를 통해 기존 가치를 빠르게 상실시키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반영될 것 같다.

메타버스 속에서 공간 개념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하는가.
하이퍼리얼리즘으로 나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현실을 온전히 즐기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일상의 가치를 콘텐츠로 간접 체험하려는 욕구가 강렬하게 발현되고 있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메타버스 속 공간은 비현실에 가까운 현실성을 추구하면서 내러티브를 갖춘 극사실주의적 방향으로 전개될 듯하다. 일례로 이미 메타버스 환경은 유니티, 언리얼 등 리얼타임 엔진을 통해 때로는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버추얼 휴먼, 메타 휴먼을 탄생시키고 있으며, 로블록스, 포트나이트, 제페토 같은 실감형 콘텐츠가 대중의 인기 아래 꾸준히 출시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상 공간이 더 현실 같은 공간이 되어가며, 어쩌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는 그 자체로 이미 현실인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하는 중인 것 같다.

가상세계의 공간이 점차 극적인 리얼리티를 갖춰나간다면 현실 공간이 지니는 의미는 어떻게 변화할까.
상대적으로 물리적 제약이 많은 현실 공간의 매력이 일부 반감될지도 모르겠다. 특히 하이퍼리얼리즘을 통한 몰입 경험은 시각에 특화되어 있다. 가상 공간에서 영원히 머무는 것이 아닌 이상 우리는 현실을 바탕으로 살아가야 하기에 가상과 현실 사이의 경험 편차는 더 두드러질 듯하다. 그러므로 가상과 현실 공간의 상호 보완적 연계가 더욱 구체화할 시점이 찾아올 것이다. 이미 많은 기업이 경험 편차를 줄이기 위해 추가 디바이스를 개발하고 페이스북의 디엠 코인처럼 가상과 현실 모두 사용 가능한 개념을 탐구하고 있다. 아울러 현실 공간은 인간 내면이 간직한 근본적인 삶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 같다. 시각보다 촉각, 후각, 미각, 청각 등 아날로그 환경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를 강조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메타버스와 현실 공간 각각에 최적화된 경험 방식으로 밸런스를 맞추지 않을까.

공간 디자이너로서 메타버스를 어떤 방식으로 받아 들이려고 하는가. 아울러 앞으로 진행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설명 부탁한다.
공간 디자이너는 물리적 공간 그 이상의 것을 다룬다. 공간이 가진 의미는 더 크고 깊으며 정신 영역을 아울러 포괄적이고 다층적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공간 안에서 사용자 경험(UX)은 보이지 않는 가치다. 이를 공간에 복합적으로 반영하고 사용자가 경험을 시각화 하도록 돕기 위해 다양한 감각을 고민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메타버스 환경의 매력은 물성을 넘어서는 경계의 모호성과 확장성이다. 정신 영역을 토대로 삼아 물리적 한계와 제한된 활동을 최적화된 경험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 이에 메타버스 시스템은 현실 공간에서 부족한 부분을 잘 채워줄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감각을 아우르는 새로운 장르로 발전해갈 것이다. 어쩌면 공간 디자이너로서 우리의 역할이 조금 제한적으로 나타나 온 것 같다. 이에 공간 디자이너가 가진 여러 관점과 가치를 메타버스 환경에 최적화된 경험으로 보여주는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중이다.




Build the Future


두 세계의 건강한 공생
THE UNCENSORED LIBRARY

Design / BlockWorks
Image / BlockWorks

국경 없는 기자회(RSF)는 ‘검열과 싸우는 진정한 방법은 검열된 것을 공유하고 퍼뜨리는 것이다’ 라는 맥락에 입각해 가상세계에 언론 자유를 위한 안전한 피난처를 구축했다. 특히 사회를 배우고 알아가는 젊은 층에게 진실한 정보를 알리기 위해 어린 연령층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게임 Minecraft를 통해 도서관을 완성했다. 디지털 레고라는 별명처럼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자유롭게 창조하는 게임 형식을 영민하게 활용했는데,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개 서버를 사용하고 각 국가에서 검열된 기사를 책 아이템으로 엮어 도서관 내부를 가득 채웠다. 특히 Minecraft를 디자인 툴로 승화하는 BlockWorks와 협업함으로써 건축적으로도 의미 있는 공간을 완성했다. 16개국에서 온 24명의 건축업자와 함께 1천 2백 50만 개 이상의 블록으로 3개월에 걸쳐 건설했으며 도서관 메인 돔의 너비는 300m에 이르러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규모를 구축한 것이다. 공간을 아우르는 콘셉트는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이다. 고대 로마와 그리스 건축에서 파생된 스타일을 접목해 문화와 지식을 상징하고 공공 건물의 웅장함을 표현했다. 진실을 향한 염원을 표현하는 자유의 공간이 뭉툭한 픽셀 이미지 너머 거룩한 심상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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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넘어선 패션쇼
GUCCI Garden

Design / Gucci
Image / Gucci Garden on Roblox

최근 GUCCI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다양한 메타버스 시스템과 호흡하고 젊은 층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면서 브랜드가 메타버스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콘텐츠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GUCCI 창립 1백 주년을 맞아 브랜드 비전을 함께 탐구하고 기념하는 몰입형 멀티미디어 전시 GUCCI Garden을 진행했다. 온라인 플랫폼 Roblox와 파트너십을 맺어 가상 투어를 진행하면서 물리적 환경과 가상 환경을 오가며 소통하고자 한 것이다. 전시는 브랜드의 지난 컬렉션을 환상적으로 묘사하며 방문객에게 분명한 아이덴티티를 각인한다. 수공예 감성과 혁신적인 인테리어 디자인을 갖춘 각 영역은 욕실, 지하철, 풀장, 가든 등 다양한 공간 형태를 차용하면서 콘셉트를 극화해 이색적인 감각을 전한다. 특히 갤러리를 탐색할 때 관람 주체가 전시 요소를 흡수하도록 한 점이 인상적인데, 디지털 아바타는 공간에 따라 다채로운 컬러와 패턴을 입은 마네킹으로 바뀌어 작품의 일부 같은 고유한 디지털 작품으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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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움직이는 디자인
The Shipping

Design / Reisinger Andrés
Image / Reisinger Andrés

Reisinger Andrés는 디지털과 물리적 세계를 합일하는 3D 디자인을 펼친다. 특히 다양한 속성을 대조하면서 물성을 풍부하게 표현하는데 현실을 초월한 것처럼 몽환적이면서도 생생하고 실제적인 디자인이 강점이다. 온라인으로 업로드했던 렌더링 작품 ‘Hortensia’ 의 경우 이색적인 조형감과 꽃잎을 두른 것처럼 신비로운 텍스처로 대중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 moooi와 실제 의자를 출시하기도 했다. 아울러 10개 가구로 구성된 ‘The Shipping’ 컬렉션을 제안해 주목받았다. 모두 오픈 월드에서 디지털로 구현됐으며 그중 5개는 물리적으로도 공개돼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컬렉션은 보랏빛 하늘과 핑크색 대지 등 신비롭고 러프한 바탕 가운데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예술적인 실루엣의 가구가 자리하는 형태다. 소재의 물성을 강조한 입체적인 표현력이 시선을 사로잡으며 디지털 특성을 살려 움직임이 가미돼 아득한 꿈 속 풍경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직접 만지지 않아도 촉감이 느껴지는 듯한 디자인과 고유한 구매 방식은 디지털 프로젝트가 단순히 허구의 대상을 소유하는 것이 아님을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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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의 경계를 넘어선 가구
이스턴 에디션

Design / Teoyang Studio
Photograph / studio her·허인영

Teoyang Studio가 선보이는 가구 브랜드 이스턴 에디션은 전통 미학을 다각도로 재해석해 오늘날 디자인에 접근하는 새로운 시야를 선사한다. 조선시대 후기에 논의된 ‘무미’ 에서 영감을 얻어 겉치레의 허무함을 깨닫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물성의 본질에 집중하는 미학을 디자인에 담았다. 과거와 현대 모두 어우러지는 나무나 돌, 유리, 브론즈, 리넨 같은 소재를 사용해 예술적이면서 편안한 감성을 자아내고자 했다. 특히 돌과 유리처럼 상반된 소재를 통일감 있는 형태로 묶어내 서로의 물성을 보완하는 작업에 공을 들였으며, 나아가 공예가 예술이 아닌 일상의 영역에 들어오도록 누비와 같은 전통 공예 기법을 적극 활용했다. 컬렉션의 지향점은 NFT 공예를 통해 더욱 다채롭게 피어난다. 삼국시대의 토기를 디지털 스캔으로 3D 데이터화하고 이를 렌더링 프로그램의 기본 언어로 변형해 편집했으며 다시 3D 프린터를 이용해 오브제로 탄생시켰다. 토기를 꽃병과 조명, 거울 등 여러 용도와 형태로 재해석한 점이 흥미로우며 NFT화된 작품은 구매자의 취향에 따라 다각도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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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 미래의 집을 소유하다
Mars House

Design / Krista Kim
Image / Krista Kim

Krista Kim이 디자인한 Mars House는 NFT 타입의 디지털 하우스로서 업계 최초로 약 50만 달러 이상에 판매돼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디지털 소유권 증명서 역할을 하는 NFT 방식으로 구매자는 가상의 집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영감을 받은 디자이너는 웰빙을 추구하기 위해 스크린을 디지털 도구로 삼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독자적 철학인 Digital Zen을 바탕으로 치유와 명상의 가치를 녹이고자 했으며, Smashing Pumpkins의 Jeff Schroeder와 협업해 신비로운 음악을 더함으로써 감각을 복합적으로 자극하는 휴식의 집을 완성했다. 공간은 불규칙한 산맥이 이어지며 황폐하지만 고혹적인 분위기를 드러내는 풍경 속에 자리한다. 밖으로 완전히 열린 구조와 바닥에서 천장까지 이어지는 유리벽이 내부를 개방적으로 연출하며, ‘빛의 조각품’ 이라는 이름을 가진 공간답게 홀로그램을 연상시키는 오묘한 색이 뒤섞여흐르며 영적 감각을 고양한다. 디자이너는 정신 건강과 치유를 이끄는 아트 설치를 위해 수익금 대부분을 기부했으며 이 디자인을 현실 공간으로도 탄생시킬 계획을 가져 더욱 뜻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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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안의 공간
The Architoys

Project / Zyva studio & Charlotte Taylor
Image / Zyva studio & Charlotte Taylor

현실과 가상, 복제와 원본이 뒤섞인 하이브리드의 시대다. 이 가운데 건축 역시 다양한 속성을 함유하는데 때로는 게임 요소를 입어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대상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건축사사무소 Zyva Studio와 Maison Sable의 Charlotte Taylor는 협업을 통해 새로운 건축 개념을 제안하는 The Architoys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The Architoys는 NFT 시스템에서 건축을 시각화하는 방식을 차용한 것으로, 알루미늄 캡슐에 공간을 담은 형태로 구성되며 첨단 기술이 결합해 고화질 이미지를 투사하고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여러 문서를 담아낼 수 있다. 아울러 고유성을 보장하기 위해 제목과 번호, 서명이 기입된다. 판매되는 프로젝트는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Villa Ortizet과 Neo-Chemosphere를 비롯해 Blue Cube, Pigalle Apartment, Villa Biarritz이며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매혹적인 콘셉트가 두드러지는 공간으로 선별됐다. 한편 빈 캡슐 파일에 액세스할 수 있도록 소스를 오픈해 다른 디자이너들도 자신의 개념을 표현하게 했으며 사용의 확장을 유도한 점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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