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rcial Space Design Trend
취재 신은지, 한성옥, 김소연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오늘날의 디자인 흐름.
다양한 취향을 받아들여 정의할 수 없는 자유의 세계를 펼치는 상공간 디자인 경향을 읽어본다.

트렌드라는 단어의 위상이 전과 같지 않다. 이전에는 한 시대를 관통하는 분명한 유행과 변화 양상이 보였으나, 모두가 자신의 개성을 외치는 현대에서 트렌드는 다양하고 세세한 갈래로 나뉜 취향의 집합체에 가깝다. 이 가운데 개인의 라이프스타일부터 형이상학적 가치까지 수많은 의미를 함유하는 공간 역시 트렌드를 새롭게 받아들인다. 특히 온라인 시스템이 보편화되면서 오프라인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경험적 가치로 승부해야 하는 상공간은 디자인의 변혁을 맞이했다. 남들과 같아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다변화한 소비자의 취향을 꼼꼼히 분석해 이색적인 콘셉트를 시도하며,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깊이 파고들어 복합적인 가치를 파생시키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상공간 디자인 트렌드는 더 이상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흐름을 가지기 시작했다. 특정 스타일 위주의 직설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다양한 디자인 요소를 변주하며 새로운 방향성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여유롭고 싱그러운 자연이 도시의 풍경과 만나 신비롭게 변모하고, 고고한 클래식 스타일이 자세를 낮춰 정감 어린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물론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떠오르는 지역과 공간이 지나치게 자주 바뀌어 소모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소비자 마음을 잘 읽어내며 단순히 콘셉트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으로 확장한 공간은 오래도록 자리를 지킨다. 이같은 공간에게 트렌드란 한번 지나가버릴 유행이 아닌, 삶으로 뻗어나갈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다. 아직 사회 곳곳이 정상화하지 않은 2021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의 공간은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변화하지 않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앞으로도 공간은 변화할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TREND. 1
인더스트리얼의 귀환
폐공장 같은 건물로 들어가 울퉁불퉁한 천장 아래에서 옛 공간의 잔해를 의자 삼아 즐기는 커피 한잔. 리노베이션, 도시 재생의 흐름과 맞물려 등장한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은 눈과 손에 닿는 무엇 하나 편하지 않더라도 과거의 흔적을 헤아려 공간의 이야기를 훑고, 러프한 구조가 주는 이색적 감각을 즐기는 맛이 있었다. 그러나 때로는 거친 콘셉트를 극대화해 불편하며 러스틱하거나 빈티지한 이미지로 촌스럽게 여겨진 것이 사실. 최근 다시 돌아온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은 다르다. 불친절한 인상에서 벗어나 제법 세련된 매무새로 방문객을 환대한다. 특유의 풍부한 이야기와 독특한 미감을 살리면서도 산업 시대의 요소를 깔끔하고 산뜻한 형태로 변주하는 것이다. 콘크리트, 벽돌, 철재, 목재 등 주로 쓰이는 거친 소재를 유지하되 요철이나 모눈을 최소화하고 면을 매끄럽게 정돈해 간결한 바탕을 만들며, 전보다 밝고 생기있는 톤으로 조절해 시각적 부담감을 덜어낸다. 또 기둥과 보 같은 굵직한 건축 요소, 파이프와 패널 등의 구조적 디테일을 인테리어에 녹여 분위기를 이어가는데, 지나치게 세밀하거나 얽힌 형태가 아니라 규칙적이고 단조롭게 배열해 밸런스를 잡는다. 특히 기계적 디테일을 어떻게 재해석하느냐에 따라 트렌디함이 좌우된다. 기계 부품을 예술적인 오브제처럼 활용하거나 감각적인 컬러를 더해 그래픽화하면 더욱 신선하고 독창적인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다.
WHOLE MOMENT
Design / Plainoddity(플레인오디티)
Location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동송로 33
Area / 49.8㎡
Photograph / Kiwoong.Hong

지나간 추억을 따듯한 풍경으로 그려내는 사진 현상소 같은 카페. 사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은 WHOLE MOMENT는 이곳에 머무는 모든 순간을 가장 포근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포착하는 카페다. 모던 빈티지 콘셉트를 토대로 지나치게 거칠고 오래돼 보이지 않도록 산뜻한 밸런스를 잡은 점이 인상적이다. 사진 현상소와 카메라 등 풍부한 모티브를 통해 공간에 이야기를 부여했으며, 차분한 모노톤에 예스러운 우드 소재를 활용해 톤 앤 매너를 정갈하게 다듬었다. 콘셉추얼한 디테일로 과거의 요소를 이미지화해 절제미가 깃든 인더스트리얼한 감각이 느껴진다. 파사드는 큰 창을 완전히 개방하기보다 어두운 선팅지를 붙여 은밀한 인상을 심는다. 단 원형 그래픽으로 일부를 비워 뷰파인더 너머로 카페를 들여다보듯 재미있는 콘셉트를 녹여냈다. 로고에 포함된 빨간 점도 카메라가 녹화되는 모습을 상징하는 요소다.

내부는 빛을 차단하는 캄캄한 방과 사진 현상소라는 두 개념을 집약해 다크 룸을 형상화했는데, 천장을 검은색으로 도장하고 벽은 조금 더 밝은 회색으로 마무리했으며 조도를 낮추어 어둠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연출했다. 바닥 역시 오래된 건물에서 볼 법한 테라조 느낌의 타일을 사용했다. 중앙에는 매스감 있는 바와 필름 수납장을 의도한 조형이 테마를 굳건히 한다. 기둥으로 천장과 연결된 박스는 앞면을 길쭉한 서랍이 켜켜이 쌓인 것처럼 만들어 필름 수납장을 표현했으며 뒷면은 상부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또 바 상단은 다크 톤의 인조 대리석으로, 하단은 빈티지 질감을 살린 시멘트로 마감해 산업적 디테일을 심화한다.

바를 둘러싼 좌석은 머무는 순간이 각기 다른 장면으로 기억되도록 4인 단체석, 2인 바 테이블 창, 가 테이블 등 다양하게 구성했는데, 옛 학교 책상처럼 상판을 이루는 합판의 모서리를 둥글게 하고 붉은 스테인 컬러를 입혀 추억을 살린다.
TREND. 2
풍요로운 미니멀
역사상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의 시대. 하지만 그 풍요로움 속에서 사람들은 나날이 공허해진다. 여러 갈래로 뻗은 길 앞에서 방향을 잃어버리듯 너무 많은 요소로 둘러싸인 삶이 오히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발견하기 힘들게 한다. 물질보다 정신적으로 충만한 삶을 갈망하는 심리는 복잡하고 화려한 공간에서 여백처럼 고요하고 단정한 공간으로 시선을 이끌었다. 색과 형태를 절제하고 장식 요소를 배제한 공간은 번잡한 마음을 다독여 쉼을 원하는 사람들을 불러들였으며 상품에 감각을 집중시켜 더욱 각광받았다. 다만 비우는 데만 치중한 공간은 지루하고 무뚝뚝하게 느껴질 수 있어 미니멀에 다양한 표정을 입히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담백한 바탕에 온기를 더해 감성적으로 다가가거나 색다른 디자인 요소를 심어 단조로운 흐름을 깨는 것이다. 선과 면은 간결하게 가다듬되 무채색 팔레트를 벗어나 라이트 베이지, 샌드, 캐러멜 등 자연스러운 베이지 계열 컬러로 공간의 온도를 높이고, 파스텔 톤을 입혀 온화하면서도 생기 있게 연출한다. 석재, 테라코타, 벨벳, 퍼 등 질감이 살아 있는 소재는 촉각을 자극해 공간의 결을 한층 풍성하게 가꾸며 물성이 대비되는 소재를 병치하면 톤을 유지하면서도 반전을 줄 수 있다. 또 내부를 다양한 규모와 비율의 영역으로 나누어 입체적 공간감을 형성하고 그중 일부를 과장하거나 독특한 구조물을 설치해 강렬한 인상을 심는다. 공간 요소를 섬세하게 조율해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미니멀은 일상의 힘을 되찾는 쉼표로 자리한다.
harlan + holden store Lotte World Mall
Design /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Location / 서울특별시 송파구
Area / 210㎡
Photograph / Simon Menges

잠실 롯데월드몰에 등장한 의류 브랜드 harlan + holden 매장은 담백한 미니멀의 역설적 존재감을 보여준다. harlan + holden은 옷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여 삶을 더 가치 있는 순간으로 채우고자 하는 브랜드로, 관리하기 쉬운 소재에 단순하면서 세련된 디자인을 적용한 옷을 선보인다. 프로젝트를 담당한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는 브랜드 철학을 고스란히 녹여낸 미니멀 스타일 매장을 제안했는데, 유연한 곡선과 따스한 색감으로 부드러운 이미지를 그리면서 외관의 양감을 살려 차분한 공간에 힘을 실었다. 부풀어 오른 듯 둥근 외관이 수많은 매장들 사이에서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데, 내부를 드러내는 대신 테라코타 패널을 조밀히 채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길고 얇은 테라코타 패널은 안쪽으로 둥글게 말고 베이지색을 입혀 한결 온화한 인상을 드리운다. 외벽 아래를 널찍하게 비워 왼쪽에 쇼윈도를 설치하고 오른쪽은 내부를 드러냄으로써 내외부를 시각적으로 연결했는데, 외관과 내부가 미묘하게 대비되면서도 조화를 이뤄 더욱 흥미롭다.

부드러움이 감도는 외관과 달리 내부는 반듯한 직선으로 공간을가르고 순수한 흰색을 입혀 적막하게 연출해 상이한 감각을 강조하면서도 융합한다. 브랜드 이미지에 맞춰 정적인 분위기에서 옷을 고르도록 디자인하되 세 개의 실을 불규칙하게 연결해 단조로움을 걷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TREND. 3
클래식의 변주
클래식의 매력 중 하나는 시대를 초월하는 힘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찬란히 빛나는 영속성을 지녔을 뿐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 잠시나마 다른 차원의 시간을 엿볼 수도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디자인을 충실하게 재현한 공간에 머물다 보면 그 시대의 삶 속으로 잠시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바로크, 로코코 등 부유층이 향유했던 스타일은 일상에서 쉽게 누릴 수 없는 풍요롭고 화려한 무드를 떨쳐 색다른 경험을 원하는 이들을 매료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웅장하고 중후한 무게감, 어지러울 정도로 과장된 장식으로 가득 찬 공간이 사람을 압도해 불편한 기억으로 남거나 거리감이 느껴질 때도 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클래식 스타일은 오늘날의 시선으로 재해석되면서 또 다른 모습으로 부활하는데, 특유의 분위기는 오롯이 간직하되 상징적 디자인을 모던하게 전개해 친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을 보여준다. 덜 톤, 톤 다운한 파스텔 등 차분한 색을 입히고 클래식을 대표하는 몰딩, 웨인스코팅, 아치 등의 요소로 고풍스러운 바탕을 마련한 뒤 실루엣을 담백하게 정제하거나 율동감을 극대화해 경쾌한 이미지를 심는 것이다. 클래식 디자인과 현대적 디자인을 융합해 제3의 매력을 이끌어내기도 하는데 섬세하게 세공한 몰딩에 모던한 조명을 병치하거나 콘크리트, 철재 등 거칠고 투박한 소재를 조합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낸다.
Maison François
Design / The Guild of Saint Luke(GSL)·John Whelan
Location / London, United Kingdom
Area / 464㎡
Photograph / OSKAR PROCTOR

런던에 자리한 Maison Fran çois는 한 시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시간을 아우르는 스타일을 구현한 브라스리다. 브라스리에서 많이 시도하는 아르데코 디자인에 포스트 모더니즘과 브루탈리즘 스타일을 결합해 클래식과 모던의 경계를 초월하는 공간을 탄생시켰는데, 아치, 격자 패널, 샹들리에 등의 요소를 간결하게 가다듬고 상이한 물성을 세심히 엮어 조화로운 풍경을 그렸다.

공간은 브라스리인 1층과 와인 바, 별실이 있는 지하로 구성된다. 따스하고 편안한 공기가 감도는 1층은 널찍한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월넛, 마호가니 등 우아한 느낌의 목재를 활용했다. 문을 열면 격자 형태로 계획한 마호가니 벽이 나타나 내부 분위기를 은유하며, 이 격자 패널이 홀과 주방으로 이어져 공간 전반의 맥락을 형성한다. 홀을 둘러싼 벽은 키 큰 아치와 테라코타색으로 시간의 흐름을 차분하게 그려낸 반면 천장은 시멘트의 거친 질감을 살려 이미지의 충돌을 통한 색다른 조화를 꾀했다. 격자 칸막이로 구역을 나누어 넓은 홀이 한결 아늑해졌으며, 교회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의자에 크림색 리넨을 씌워 평온함이 무르익었다.

한편 탁자, 조명 등 곳곳에서 황동, 청동, 니켈 같은 금속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는데, 클래식과 상반되는 인더스트리얼 요소를 심음으로써 공간이 한층 풍성해졌다. 그중에서도 홀과 주방의 통로 위에 설치한 시계는 1970년대 RADO 시계와 ROLLS-ROYCE 자동차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으로 빈티지한 멋을 보여준다.

나무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벽돌 벽을 흰색으로 칠해 인더스트리얼 무드를 산뜻하게 풀어낸 와인 바가 나타나는데, 좌석에 검은색 가죽을 적용해 클래식 감성을 이어갔으며 70년대풍 조명을 매달아 콘셉트를 촘촘하게 마무리했다.
TREND. 4
정제된 야성
때로는 이리저리 뻗어나가는 역동적인 형태가 아니라 고요해 보이는 단순하고 원초적인 디자인이 큰 에너지를 발산한다. 형태의 본질을 탐구한 구성주의는 기본 도형과 추상에 집중해 산업 시대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확립했으며, 데 스틸은 수직과 수평의 기하학 원리와 직관적인 컬러로 순수한 조형 세계를 추구한 바 있다. 이러한 가치는 방향성을 넓혀 공간 안에서 입체화되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다채로운 조형 요소를 균형 있게 절제한 공간이 현대적 미감을 새로이 정의하는 중이다. 직선, 원, 다각형 등의 도형을 간결하고 넓게 펼쳐 다양한 비례감을 조성하고, 별다른 장식 요소 없이 원초적 감각을 살려 공간을 하나의 추상 조각 작품처럼 승화한다. 단조로이 얽히는 선은 깔끔하면서도 미니멀과는 달리 여러 형태를 간직해 마음에 부드럽고 온유한 쉼을 불어넣으며, 이 선과 면이 가볍게 흘러가지 않도록 큼직하고 두텁게 매만져 묵직한 안정감을 의도한다. 특히 지루할 수 있는 구조가 오히려 풍성하고 역동적으로 피어나는 것은 소재와 색채에 자연 물성을 집약하고 신비롭게 변주하기 때문이다. 시각적 촉감이 느껴지는 거친 석재나 목재, 손으로 매만진 듯한 플라스터, 테라코타 등 내추럴한 마감재를 선택하고 여러 물성을 교차 배치해 풍요롭다. 여기에 일부를 부서진 것처럼 비정형적으로 연출하거나 야생에서 온 듯한 날 것의 형태로 포인트를 주면 콘셉트가 살아난다. 아울러 자연을 닮은 뉴트럴과 어스 톤으로 원초적인 힘을 더하고 빛이 바랜 것 같은 낮은 채도의 그린, 블루 컬러 등을 입혀 오묘한 분위기를 이끌어낼 수 있다.
HOFF FLAGSHIP STORE
Architects / Ciszak Dalmas + Matteo Ferrari
Location / Calle Velázquez 39, 28001 Madrid, Spain
Area / 45㎡
Photograph / Asier Rua(Store Portrait), Rafael Benito(Moodboard)

기하학 요소를 감각적으로 변주한 HOFF FLAGSHIP STORE는 브랜드 정체성과 콘셉트를 긴밀하게 연결해 곳곳에 신비로운 이야기가 흐르는 쇼룸이다. 특히 기본 도형을 활용하되 비율을 이색적으로 매만지고 소재와 톤을 다채롭게 중첩해 새로운 공간감을 창조한 점에 주목할 만하다. 노출되는 면을 심플하게 정돈하면서도 대각선, 곡선, 반원 등 다양한 조형 언어를 적용함으로써 메인 아이템인 신발을 우아하게 전시하는 갤러리 같은 매장을 완성했다. 또 유니섹스를 지향하는 제품 특성을 고려해 회색, 분홍색, 옅은 녹색 등 조율하기 어려운 컬러를 매만져 중립적인 이미지를 유지했다.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곡선형 벽은 연보라와 분홍을 아우르는 마운트바텐 핑크 컬러를 통해 차분하면서도 낯선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벽 중앙에는 가장자리가 둥근 개구부를 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몰입감을 자아냈으며, 에메랄드빛이 감도는 녹색 단과 보드라운 트위드 부클레 소파를 연결성 있게 배치해 컬러와 소재가 은은하게 충돌한다. 이어지는 화이트 톤 벽면에는 둥글고 굵직한 선반으로 만든 디스플레이 단을 매립해 제품을 고급스럽게 보여준다. 그 앞에는 마드리드 지역의 전통 소재인 세풀베다 석재로 뉴트럴 톤의 테이블을 만들어 흙의 질감을 재현했으며, 이를 러프한 형태로 구성하고 자연스럽게 교차해 지나치게 무겁게 보이지 않도록 신경 썼다. 맞은편 벽면에는 다양한 타이포그라피를 표현하는 금속 시스템과 비정형 선반을 설치했는데, 클레인 블루 컬러를 입혀 독특한 대비감을 이룬다.

TREND. 5
자연을 사유하다
자연 속에서 누리는 휴식은 심신을 편안하게 할 뿐 아니라 그 품에 기대어 자신을 천천히 돌아보고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명상 시간을 선사한다. 또 인간의 내면에는 늘 자연에 대한 동경이 자리하고 있어 이를 구현해 편안하게 다가가려는 상공간이 소비자의 마음에 화답한다. 이 같은 내추럴 콘셉트는 더욱 다채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자연을 단순한 데커레이션으로 활용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규모와 기능을 더욱 완결성 있게 엮어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공간 전체를 식물로 감싸거나 도심 속 숲을 연출하는 등 초록 숨통을 트고자 한다. 식물을 직접 들이지 않더라도 대형 파사드에 영상을 투사해 자연을 가까이 하거나, 재활용 소재로 환경 보호에 대한 인식을 심는 등 다양한 방식을 꾀한다. 특히 심미적 관점에서 자연에 접근하는 방식이 확장된 점에 주목할 만하다. 자연의 의미를 넓게 재해석해 몽환적이거나 초현실을 구현한 듯 생경한 이미지로 탄생시키는 것이다. 이에 기하학적 도형이나 바이올렛, 파스텔 컬러 등을 더해 자연의 낯선 얼굴을 보여준다. 또 공업 소재 또는 네온사인, 패브릭 조명 같은 현대 요소와 식물을 병치해 싱그러운 느낌을 극적으로 부각하기도 한다.
Cafe Vista
Design / Karv One Design
Location / Fuzhou, China
Area / 930㎡
Photograph / King Ou, Jimmy He

Cafe Vista 프로젝트는 현대적인 그리드 조형물을 매개로 공간에 식물을 들여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풍경을 구현한 프로젝트다. 조형물에 엮인 식물이 연출하는 푸르른 흐름은 파사드를 통해 단조로운 거리 풍경을 생동감 있게 전환한다. 내부는 중앙에 거대한 카운터와 그 옆에 원형 붙박이 좌석을 갖춘 간결한 구성을 띠는데, 천장에 흰색 금속 격자로 만든 구조물을 설치해 다소 밋밋할 수 있는 공간에 극적인 풍경을 덧입힌 점이 인상적이다. 구조물은 바람에 펄럭이는 리본처럼 우아하고 자유로운 흐름을 보여주며, 여기에 꽃과 나무를 식재해 초현실적인 실내 정원을 완성했다. 구조물은 바닥까지 이어져 미로같이 구불거리는 동선을 연출해 방문객은 공간을 유영하듯 탐색하게 된다. 또 구조물 사이에 조명을 삽입하고 식물로 만든 오브제를 배치해 몽환적 감각을 고조했다. 벽면 그라데이션 유리는 조형물을 비춰 공간을 시각적으로 확장하며, 물을 연상시키는 블루 컬러가 오묘하게 퍼져나가 콘셉트를 자연스럽게 뒷받침한다. 여기에 스테인리스 스틸, 레더, 테라조 등 다양한 물성의 집기를 매치해 한층 정제되고 모던한 분위기로 가꾸며, 구조물과 같이 자유로운 흐름을 갖도록 배치해 리듬감을 이어간다.

TREND. 6
창조하는 모방
마음속에 간직한 장면까지 눈앞에 판타지로 보여주는 시대. 밀레니얼 세대는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고 SNS를 통해 타인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다양한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외부를 신경 쓰기보다 자신의 기준대로 살아가는 이들의 라이프스타일로 인해 상공간도 다양한 전략을 구축한다. 이때 특정한 대상을 본뜬 모방은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효과적으로 접목하고 이색적인 경험을 전하는 영민한 전략이 된다. 최근에는 단순히 이미지를 차용하는 데서 나아가 그 주제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콘셉트를 공간에 풀어놓는 모습이 엿보인다. 일례로 고대의 풍경을 작은 요소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재현해 경험하지 못한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거나, 원더랜드같이 상상력이 응축된 공간을 눈앞에 실현해 일상에 짜릿한 활력을 심기도 한다. 특히 온라인 비주얼 특성을 오프라인으로 확장한 상공간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명쾌한 그래픽 요소, 볼드한 타이포그래피, 기하학적 구조 등 온라인 특유의 시각 언어가 반영돼 직관적 이미지를 구축하며, 여기에 레드, 옐로, 블루 등 명료한 원색을 더해 한층 강렬하다. 이를 통해 모티브의 대상보다 더 사실적이고 환상적이며, 추상적인 개념어까지 압도적인 감각으로 풀어내 모방이 창조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Tienda 14 Store
Design / Studio Animal·Javier J. Iniesta
Location / Madrid, Spain
Area / 135㎡
Photograph / José Hevia

MUNICH는 스니커즈 브랜드 특유의 발랄하고 활동적인 이미지를 구현하고자 유희성을 극대화한 매장을 선보였다. 설계를 담당한 Studio Animal은 정사각형의 좁은 부지에 지나가던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역동적인 콘셉트를 부여하고자 서커스장의 천막을 모티브로 공간을 전개했다. 이에 디자이너는 벽면과 천장을 피라미드 형태로 빚어 기하학적인 대칭 구조를 이루었으며, 천막을 형상화한 천장의 모서리를 극적으로 높여 압도적 공간감을 전하고자 했다. 여기에 원색을 입히되 블루, 오렌지 등으로 강렬한 보색 대비를 꾀해 한층 독창적인 표현을 보여준다. 상부에는 브랜드 로고를 입체적으로 제작해 정체성을 각인하고 그 아래 원형 레일 조명을 달아 무대 같은 공간을 연출했다. 아울러 구조를 따라 삼각형으로 가공된 벽면에 거울을 시공하고 단을 마련하는 등 개성 있는 디스플레이 공간으로 제품을 돋보이게 한다. 여기에 서커스장 천막을 닮은 각진 형태의 디스플레이 장과 옐로 컬러의 삼각형 스툴을 매치해 콘셉트를 일체감 있게 이어갔다. 한편 모서리의 유휴 공간은 액세서리와 이벤트 영역으로 꾸몄는데, 포켓 공간처럼 아늑하게 디자인해 재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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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신은지, 한성옥, 김소연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오늘날의 디자인 흐름.
다양한 취향을 받아들여 정의할 수 없는 자유의 세계를 펼치는 상공간 디자인 경향을 읽어본다.
트렌드라는 단어의 위상이 전과 같지 않다. 이전에는 한 시대를 관통하는 분명한 유행과 변화 양상이 보였으나, 모두가 자신의 개성을 외치는 현대에서 트렌드는 다양하고 세세한 갈래로 나뉜 취향의 집합체에 가깝다. 이 가운데 개인의 라이프스타일부터 형이상학적 가치까지 수많은 의미를 함유하는 공간 역시 트렌드를 새롭게 받아들인다. 특히 온라인 시스템이 보편화되면서 오프라인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경험적 가치로 승부해야 하는 상공간은 디자인의 변혁을 맞이했다. 남들과 같아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다변화한 소비자의 취향을 꼼꼼히 분석해 이색적인 콘셉트를 시도하며,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깊이 파고들어 복합적인 가치를 파생시키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상공간 디자인 트렌드는 더 이상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흐름을 가지기 시작했다. 특정 스타일 위주의 직설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다양한 디자인 요소를 변주하며 새로운 방향성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여유롭고 싱그러운 자연이 도시의 풍경과 만나 신비롭게 변모하고, 고고한 클래식 스타일이 자세를 낮춰 정감 어린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물론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떠오르는 지역과 공간이 지나치게 자주 바뀌어 소모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소비자 마음을 잘 읽어내며 단순히 콘셉트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으로 확장한 공간은 오래도록 자리를 지킨다. 이같은 공간에게 트렌드란 한번 지나가버릴 유행이 아닌, 삶으로 뻗어나갈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다. 아직 사회 곳곳이 정상화하지 않은 2021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의 공간은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변화하지 않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앞으로도 공간은 변화할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TREND. 1
인더스트리얼의 귀환
폐공장 같은 건물로 들어가 울퉁불퉁한 천장 아래에서 옛 공간의 잔해를 의자 삼아 즐기는 커피 한잔. 리노베이션, 도시 재생의 흐름과 맞물려 등장한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은 눈과 손에 닿는 무엇 하나 편하지 않더라도 과거의 흔적을 헤아려 공간의 이야기를 훑고, 러프한 구조가 주는 이색적 감각을 즐기는 맛이 있었다. 그러나 때로는 거친 콘셉트를 극대화해 불편하며 러스틱하거나 빈티지한 이미지로 촌스럽게 여겨진 것이 사실. 최근 다시 돌아온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은 다르다. 불친절한 인상에서 벗어나 제법 세련된 매무새로 방문객을 환대한다. 특유의 풍부한 이야기와 독특한 미감을 살리면서도 산업 시대의 요소를 깔끔하고 산뜻한 형태로 변주하는 것이다. 콘크리트, 벽돌, 철재, 목재 등 주로 쓰이는 거친 소재를 유지하되 요철이나 모눈을 최소화하고 면을 매끄럽게 정돈해 간결한 바탕을 만들며, 전보다 밝고 생기있는 톤으로 조절해 시각적 부담감을 덜어낸다. 또 기둥과 보 같은 굵직한 건축 요소, 파이프와 패널 등의 구조적 디테일을 인테리어에 녹여 분위기를 이어가는데, 지나치게 세밀하거나 얽힌 형태가 아니라 규칙적이고 단조롭게 배열해 밸런스를 잡는다. 특히 기계적 디테일을 어떻게 재해석하느냐에 따라 트렌디함이 좌우된다. 기계 부품을 예술적인 오브제처럼 활용하거나 감각적인 컬러를 더해 그래픽화하면 더욱 신선하고 독창적인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다.
WHOLE MOMENT
Design / Plainoddity(플레인오디티)
Location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동송로 33
Area / 49.8㎡
Photograph / Kiwoong.Hong
지나간 추억을 따듯한 풍경으로 그려내는 사진 현상소 같은 카페. 사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은 WHOLE MOMENT는 이곳에 머무는 모든 순간을 가장 포근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포착하는 카페다. 모던 빈티지 콘셉트를 토대로 지나치게 거칠고 오래돼 보이지 않도록 산뜻한 밸런스를 잡은 점이 인상적이다. 사진 현상소와 카메라 등 풍부한 모티브를 통해 공간에 이야기를 부여했으며, 차분한 모노톤에 예스러운 우드 소재를 활용해 톤 앤 매너를 정갈하게 다듬었다. 콘셉추얼한 디테일로 과거의 요소를 이미지화해 절제미가 깃든 인더스트리얼한 감각이 느껴진다. 파사드는 큰 창을 완전히 개방하기보다 어두운 선팅지를 붙여 은밀한 인상을 심는다. 단 원형 그래픽으로 일부를 비워 뷰파인더 너머로 카페를 들여다보듯 재미있는 콘셉트를 녹여냈다. 로고에 포함된 빨간 점도 카메라가 녹화되는 모습을 상징하는 요소다.
내부는 빛을 차단하는 캄캄한 방과 사진 현상소라는 두 개념을 집약해 다크 룸을 형상화했는데, 천장을 검은색으로 도장하고 벽은 조금 더 밝은 회색으로 마무리했으며 조도를 낮추어 어둠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연출했다. 바닥 역시 오래된 건물에서 볼 법한 테라조 느낌의 타일을 사용했다. 중앙에는 매스감 있는 바와 필름 수납장을 의도한 조형이 테마를 굳건히 한다. 기둥으로 천장과 연결된 박스는 앞면을 길쭉한 서랍이 켜켜이 쌓인 것처럼 만들어 필름 수납장을 표현했으며 뒷면은 상부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또 바 상단은 다크 톤의 인조 대리석으로, 하단은 빈티지 질감을 살린 시멘트로 마감해 산업적 디테일을 심화한다.
바를 둘러싼 좌석은 머무는 순간이 각기 다른 장면으로 기억되도록 4인 단체석, 2인 바 테이블 창, 가 테이블 등 다양하게 구성했는데, 옛 학교 책상처럼 상판을 이루는 합판의 모서리를 둥글게 하고 붉은 스테인 컬러를 입혀 추억을 살린다.
TREND. 2
풍요로운 미니멀
역사상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의 시대. 하지만 그 풍요로움 속에서 사람들은 나날이 공허해진다. 여러 갈래로 뻗은 길 앞에서 방향을 잃어버리듯 너무 많은 요소로 둘러싸인 삶이 오히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발견하기 힘들게 한다. 물질보다 정신적으로 충만한 삶을 갈망하는 심리는 복잡하고 화려한 공간에서 여백처럼 고요하고 단정한 공간으로 시선을 이끌었다. 색과 형태를 절제하고 장식 요소를 배제한 공간은 번잡한 마음을 다독여 쉼을 원하는 사람들을 불러들였으며 상품에 감각을 집중시켜 더욱 각광받았다. 다만 비우는 데만 치중한 공간은 지루하고 무뚝뚝하게 느껴질 수 있어 미니멀에 다양한 표정을 입히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담백한 바탕에 온기를 더해 감성적으로 다가가거나 색다른 디자인 요소를 심어 단조로운 흐름을 깨는 것이다. 선과 면은 간결하게 가다듬되 무채색 팔레트를 벗어나 라이트 베이지, 샌드, 캐러멜 등 자연스러운 베이지 계열 컬러로 공간의 온도를 높이고, 파스텔 톤을 입혀 온화하면서도 생기 있게 연출한다. 석재, 테라코타, 벨벳, 퍼 등 질감이 살아 있는 소재는 촉각을 자극해 공간의 결을 한층 풍성하게 가꾸며 물성이 대비되는 소재를 병치하면 톤을 유지하면서도 반전을 줄 수 있다. 또 내부를 다양한 규모와 비율의 영역으로 나누어 입체적 공간감을 형성하고 그중 일부를 과장하거나 독특한 구조물을 설치해 강렬한 인상을 심는다. 공간 요소를 섬세하게 조율해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미니멀은 일상의 힘을 되찾는 쉼표로 자리한다.
harlan + holden store Lotte World Mall
Design /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Location / 서울특별시 송파구
Area / 210㎡
Photograph / Simon Menges
잠실 롯데월드몰에 등장한 의류 브랜드 harlan + holden 매장은 담백한 미니멀의 역설적 존재감을 보여준다. harlan + holden은 옷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여 삶을 더 가치 있는 순간으로 채우고자 하는 브랜드로, 관리하기 쉬운 소재에 단순하면서 세련된 디자인을 적용한 옷을 선보인다. 프로젝트를 담당한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는 브랜드 철학을 고스란히 녹여낸 미니멀 스타일 매장을 제안했는데, 유연한 곡선과 따스한 색감으로 부드러운 이미지를 그리면서 외관의 양감을 살려 차분한 공간에 힘을 실었다. 부풀어 오른 듯 둥근 외관이 수많은 매장들 사이에서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데, 내부를 드러내는 대신 테라코타 패널을 조밀히 채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길고 얇은 테라코타 패널은 안쪽으로 둥글게 말고 베이지색을 입혀 한결 온화한 인상을 드리운다. 외벽 아래를 널찍하게 비워 왼쪽에 쇼윈도를 설치하고 오른쪽은 내부를 드러냄으로써 내외부를 시각적으로 연결했는데, 외관과 내부가 미묘하게 대비되면서도 조화를 이뤄 더욱 흥미롭다.
부드러움이 감도는 외관과 달리 내부는 반듯한 직선으로 공간을가르고 순수한 흰색을 입혀 적막하게 연출해 상이한 감각을 강조하면서도 융합한다. 브랜드 이미지에 맞춰 정적인 분위기에서 옷을 고르도록 디자인하되 세 개의 실을 불규칙하게 연결해 단조로움을 걷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TREND. 3
클래식의 변주
클래식의 매력 중 하나는 시대를 초월하는 힘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찬란히 빛나는 영속성을 지녔을 뿐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 잠시나마 다른 차원의 시간을 엿볼 수도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디자인을 충실하게 재현한 공간에 머물다 보면 그 시대의 삶 속으로 잠시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바로크, 로코코 등 부유층이 향유했던 스타일은 일상에서 쉽게 누릴 수 없는 풍요롭고 화려한 무드를 떨쳐 색다른 경험을 원하는 이들을 매료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웅장하고 중후한 무게감, 어지러울 정도로 과장된 장식으로 가득 찬 공간이 사람을 압도해 불편한 기억으로 남거나 거리감이 느껴질 때도 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클래식 스타일은 오늘날의 시선으로 재해석되면서 또 다른 모습으로 부활하는데, 특유의 분위기는 오롯이 간직하되 상징적 디자인을 모던하게 전개해 친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을 보여준다. 덜 톤, 톤 다운한 파스텔 등 차분한 색을 입히고 클래식을 대표하는 몰딩, 웨인스코팅, 아치 등의 요소로 고풍스러운 바탕을 마련한 뒤 실루엣을 담백하게 정제하거나 율동감을 극대화해 경쾌한 이미지를 심는 것이다. 클래식 디자인과 현대적 디자인을 융합해 제3의 매력을 이끌어내기도 하는데 섬세하게 세공한 몰딩에 모던한 조명을 병치하거나 콘크리트, 철재 등 거칠고 투박한 소재를 조합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낸다.
Maison François
Design / The Guild of Saint Luke(GSL)·John Whelan
Location / London, United Kingdom
Area / 464㎡
Photograph / OSKAR PROCTOR
런던에 자리한 Maison Fran çois는 한 시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시간을 아우르는 스타일을 구현한 브라스리다. 브라스리에서 많이 시도하는 아르데코 디자인에 포스트 모더니즘과 브루탈리즘 스타일을 결합해 클래식과 모던의 경계를 초월하는 공간을 탄생시켰는데, 아치, 격자 패널, 샹들리에 등의 요소를 간결하게 가다듬고 상이한 물성을 세심히 엮어 조화로운 풍경을 그렸다.
공간은 브라스리인 1층과 와인 바, 별실이 있는 지하로 구성된다. 따스하고 편안한 공기가 감도는 1층은 널찍한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월넛, 마호가니 등 우아한 느낌의 목재를 활용했다. 문을 열면 격자 형태로 계획한 마호가니 벽이 나타나 내부 분위기를 은유하며, 이 격자 패널이 홀과 주방으로 이어져 공간 전반의 맥락을 형성한다. 홀을 둘러싼 벽은 키 큰 아치와 테라코타색으로 시간의 흐름을 차분하게 그려낸 반면 천장은 시멘트의 거친 질감을 살려 이미지의 충돌을 통한 색다른 조화를 꾀했다. 격자 칸막이로 구역을 나누어 넓은 홀이 한결 아늑해졌으며, 교회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의자에 크림색 리넨을 씌워 평온함이 무르익었다.
한편 탁자, 조명 등 곳곳에서 황동, 청동, 니켈 같은 금속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는데, 클래식과 상반되는 인더스트리얼 요소를 심음으로써 공간이 한층 풍성해졌다. 그중에서도 홀과 주방의 통로 위에 설치한 시계는 1970년대 RADO 시계와 ROLLS-ROYCE 자동차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으로 빈티지한 멋을 보여준다.
나무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벽돌 벽을 흰색으로 칠해 인더스트리얼 무드를 산뜻하게 풀어낸 와인 바가 나타나는데, 좌석에 검은색 가죽을 적용해 클래식 감성을 이어갔으며 70년대풍 조명을 매달아 콘셉트를 촘촘하게 마무리했다.
TREND. 4
정제된 야성
때로는 이리저리 뻗어나가는 역동적인 형태가 아니라 고요해 보이는 단순하고 원초적인 디자인이 큰 에너지를 발산한다. 형태의 본질을 탐구한 구성주의는 기본 도형과 추상에 집중해 산업 시대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확립했으며, 데 스틸은 수직과 수평의 기하학 원리와 직관적인 컬러로 순수한 조형 세계를 추구한 바 있다. 이러한 가치는 방향성을 넓혀 공간 안에서 입체화되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다채로운 조형 요소를 균형 있게 절제한 공간이 현대적 미감을 새로이 정의하는 중이다. 직선, 원, 다각형 등의 도형을 간결하고 넓게 펼쳐 다양한 비례감을 조성하고, 별다른 장식 요소 없이 원초적 감각을 살려 공간을 하나의 추상 조각 작품처럼 승화한다. 단조로이 얽히는 선은 깔끔하면서도 미니멀과는 달리 여러 형태를 간직해 마음에 부드럽고 온유한 쉼을 불어넣으며, 이 선과 면이 가볍게 흘러가지 않도록 큼직하고 두텁게 매만져 묵직한 안정감을 의도한다. 특히 지루할 수 있는 구조가 오히려 풍성하고 역동적으로 피어나는 것은 소재와 색채에 자연 물성을 집약하고 신비롭게 변주하기 때문이다. 시각적 촉감이 느껴지는 거친 석재나 목재, 손으로 매만진 듯한 플라스터, 테라코타 등 내추럴한 마감재를 선택하고 여러 물성을 교차 배치해 풍요롭다. 여기에 일부를 부서진 것처럼 비정형적으로 연출하거나 야생에서 온 듯한 날 것의 형태로 포인트를 주면 콘셉트가 살아난다. 아울러 자연을 닮은 뉴트럴과 어스 톤으로 원초적인 힘을 더하고 빛이 바랜 것 같은 낮은 채도의 그린, 블루 컬러 등을 입혀 오묘한 분위기를 이끌어낼 수 있다.
HOFF FLAGSHIP STORE
Architects / Ciszak Dalmas + Matteo Ferrari
Location / Calle Velázquez 39, 28001 Madrid, Spain
Area / 45㎡
Photograph / Asier Rua(Store Portrait), Rafael Benito(Moodboard)
기하학 요소를 감각적으로 변주한 HOFF FLAGSHIP STORE는 브랜드 정체성과 콘셉트를 긴밀하게 연결해 곳곳에 신비로운 이야기가 흐르는 쇼룸이다. 특히 기본 도형을 활용하되 비율을 이색적으로 매만지고 소재와 톤을 다채롭게 중첩해 새로운 공간감을 창조한 점에 주목할 만하다. 노출되는 면을 심플하게 정돈하면서도 대각선, 곡선, 반원 등 다양한 조형 언어를 적용함으로써 메인 아이템인 신발을 우아하게 전시하는 갤러리 같은 매장을 완성했다. 또 유니섹스를 지향하는 제품 특성을 고려해 회색, 분홍색, 옅은 녹색 등 조율하기 어려운 컬러를 매만져 중립적인 이미지를 유지했다.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곡선형 벽은 연보라와 분홍을 아우르는 마운트바텐 핑크 컬러를 통해 차분하면서도 낯선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벽 중앙에는 가장자리가 둥근 개구부를 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몰입감을 자아냈으며, 에메랄드빛이 감도는 녹색 단과 보드라운 트위드 부클레 소파를 연결성 있게 배치해 컬러와 소재가 은은하게 충돌한다. 이어지는 화이트 톤 벽면에는 둥글고 굵직한 선반으로 만든 디스플레이 단을 매립해 제품을 고급스럽게 보여준다. 그 앞에는 마드리드 지역의 전통 소재인 세풀베다 석재로 뉴트럴 톤의 테이블을 만들어 흙의 질감을 재현했으며, 이를 러프한 형태로 구성하고 자연스럽게 교차해 지나치게 무겁게 보이지 않도록 신경 썼다. 맞은편 벽면에는 다양한 타이포그라피를 표현하는 금속 시스템과 비정형 선반을 설치했는데, 클레인 블루 컬러를 입혀 독특한 대비감을 이룬다.
TREND. 5
자연을 사유하다
자연 속에서 누리는 휴식은 심신을 편안하게 할 뿐 아니라 그 품에 기대어 자신을 천천히 돌아보고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명상 시간을 선사한다. 또 인간의 내면에는 늘 자연에 대한 동경이 자리하고 있어 이를 구현해 편안하게 다가가려는 상공간이 소비자의 마음에 화답한다. 이 같은 내추럴 콘셉트는 더욱 다채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자연을 단순한 데커레이션으로 활용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규모와 기능을 더욱 완결성 있게 엮어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공간 전체를 식물로 감싸거나 도심 속 숲을 연출하는 등 초록 숨통을 트고자 한다. 식물을 직접 들이지 않더라도 대형 파사드에 영상을 투사해 자연을 가까이 하거나, 재활용 소재로 환경 보호에 대한 인식을 심는 등 다양한 방식을 꾀한다. 특히 심미적 관점에서 자연에 접근하는 방식이 확장된 점에 주목할 만하다. 자연의 의미를 넓게 재해석해 몽환적이거나 초현실을 구현한 듯 생경한 이미지로 탄생시키는 것이다. 이에 기하학적 도형이나 바이올렛, 파스텔 컬러 등을 더해 자연의 낯선 얼굴을 보여준다. 또 공업 소재 또는 네온사인, 패브릭 조명 같은 현대 요소와 식물을 병치해 싱그러운 느낌을 극적으로 부각하기도 한다.
Cafe Vista
Design / Karv One Design
Location / Fuzhou, China
Area / 930㎡
Photograph / King Ou, Jimmy He
Cafe Vista 프로젝트는 현대적인 그리드 조형물을 매개로 공간에 식물을 들여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풍경을 구현한 프로젝트다. 조형물에 엮인 식물이 연출하는 푸르른 흐름은 파사드를 통해 단조로운 거리 풍경을 생동감 있게 전환한다. 내부는 중앙에 거대한 카운터와 그 옆에 원형 붙박이 좌석을 갖춘 간결한 구성을 띠는데, 천장에 흰색 금속 격자로 만든 구조물을 설치해 다소 밋밋할 수 있는 공간에 극적인 풍경을 덧입힌 점이 인상적이다. 구조물은 바람에 펄럭이는 리본처럼 우아하고 자유로운 흐름을 보여주며, 여기에 꽃과 나무를 식재해 초현실적인 실내 정원을 완성했다. 구조물은 바닥까지 이어져 미로같이 구불거리는 동선을 연출해 방문객은 공간을 유영하듯 탐색하게 된다. 또 구조물 사이에 조명을 삽입하고 식물로 만든 오브제를 배치해 몽환적 감각을 고조했다. 벽면 그라데이션 유리는 조형물을 비춰 공간을 시각적으로 확장하며, 물을 연상시키는 블루 컬러가 오묘하게 퍼져나가 콘셉트를 자연스럽게 뒷받침한다. 여기에 스테인리스 스틸, 레더, 테라조 등 다양한 물성의 집기를 매치해 한층 정제되고 모던한 분위기로 가꾸며, 구조물과 같이 자유로운 흐름을 갖도록 배치해 리듬감을 이어간다.
TREND. 6
창조하는 모방
마음속에 간직한 장면까지 눈앞에 판타지로 보여주는 시대. 밀레니얼 세대는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고 SNS를 통해 타인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다양한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외부를 신경 쓰기보다 자신의 기준대로 살아가는 이들의 라이프스타일로 인해 상공간도 다양한 전략을 구축한다. 이때 특정한 대상을 본뜬 모방은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효과적으로 접목하고 이색적인 경험을 전하는 영민한 전략이 된다. 최근에는 단순히 이미지를 차용하는 데서 나아가 그 주제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콘셉트를 공간에 풀어놓는 모습이 엿보인다. 일례로 고대의 풍경을 작은 요소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재현해 경험하지 못한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거나, 원더랜드같이 상상력이 응축된 공간을 눈앞에 실현해 일상에 짜릿한 활력을 심기도 한다. 특히 온라인 비주얼 특성을 오프라인으로 확장한 상공간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명쾌한 그래픽 요소, 볼드한 타이포그래피, 기하학적 구조 등 온라인 특유의 시각 언어가 반영돼 직관적 이미지를 구축하며, 여기에 레드, 옐로, 블루 등 명료한 원색을 더해 한층 강렬하다. 이를 통해 모티브의 대상보다 더 사실적이고 환상적이며, 추상적인 개념어까지 압도적인 감각으로 풀어내 모방이 창조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Tienda 14 Store
Design / Studio Animal·Javier J. Iniesta
Location / Madrid, Spain
Area / 135㎡
Photograph / José Hevia
MUNICH는 스니커즈 브랜드 특유의 발랄하고 활동적인 이미지를 구현하고자 유희성을 극대화한 매장을 선보였다. 설계를 담당한 Studio Animal은 정사각형의 좁은 부지에 지나가던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역동적인 콘셉트를 부여하고자 서커스장의 천막을 모티브로 공간을 전개했다. 이에 디자이너는 벽면과 천장을 피라미드 형태로 빚어 기하학적인 대칭 구조를 이루었으며, 천막을 형상화한 천장의 모서리를 극적으로 높여 압도적 공간감을 전하고자 했다. 여기에 원색을 입히되 블루, 오렌지 등으로 강렬한 보색 대비를 꾀해 한층 독창적인 표현을 보여준다. 상부에는 브랜드 로고를 입체적으로 제작해 정체성을 각인하고 그 아래 원형 레일 조명을 달아 무대 같은 공간을 연출했다. 아울러 구조를 따라 삼각형으로 가공된 벽면에 거울을 시공하고 단을 마련하는 등 개성 있는 디스플레이 공간으로 제품을 돋보이게 한다. 여기에 서커스장 천막을 닮은 각진 형태의 디스플레이 장과 옐로 컬러의 삼각형 스툴을 매치해 콘셉트를 일체감 있게 이어갔다. 한편 모서리의 유휴 공간은 액세서리와 이벤트 영역으로 꾸몄는데, 포켓 공간처럼 아늑하게 디자인해 재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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