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스미는 문화 - CULTURE BECOME LIFE (2021.2)

일상에 스미는 문화
CULTURE BECOME LIFE

취재 한성옥, 김소연

문화는 누구나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을 때 가장 빛난다.
경직된 틀을 뛰쳐나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문화·예술 공간은 일상을 예술로 승화하고 문화에 새로운 흐름을 불러오는 마중물이 된다.


좌석을 꽉 채운 사람들이 스크린을 보며 동시에 울고 웃는 영화관, 가지각색의 목소리로 떼창을 하며 새로운 하모니를 만드는 콘서트.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멀어진 풍경이다. 코로나19로 삶 전반이 뒤흔들렸지만 문화·예술계는 특히 큰 타격을 받았다. 온라인 공연 실황, 디지털 전시 등으로 상황을 헤쳐 나가려 해도 이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문화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진다. 두텁게 덧발린 물감의 질감, 감정을 끌어내는 연극 배우의 떨리는 숨결처럼 예술 작품에는 직접 봐야만 느낄 수 있는 아우라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제한되는 시대는 오히려 문화와 예술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문화와 예술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마음을 위로하며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삶에 윤기를 더한다. 하지만 생존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에 사치나 낭비로 치부되기도 해 오랜 세월 동안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로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중문화가 등장하고 기존의 문화도 더 넓은 계층으로 뻗어 나갔지만 일상과 문화 사이는 여전히 멀다. 클래식 연주회는 즐기기보다는 진지한 자세로 들어야 할 것 같고 갤러리는 문이 활짝 열려 있어도 선뜻 들어설 수 없다. 그러나 문화는 사람들이 향유할 때 진정한 힘을 얻기에 문화 공간 역시 대중과 가까워지려 노력하고 있다. 웰니스 공간을 결합한 갤러리, 수공예 작업실을 마련한 도서관 등 다채로운 구성을 갖춰 발길을 유인하는 것이다. 아예 기존의 공간을 벗어나 대중과 새로운 접점을 만드는 움직임은 더욱 눈에 띈다. 호텔이 지역 예술의 산실이 되고 와이너리에 공연 무대를 설치하거나 카페 소속 북 큐레이터가 책을 추천하기도하며 일상 속으로 깊이 파고든다. 쇼핑하다가 마음에 드는 그림을 발견하고, 커피를 마시다 LP의 독특한 소리를 알게 되는 경험은 문화와의 거리를 자연스레 좁히며 삶을 풍요롭게 한다. 산책 가듯 가볍게 들를 수 있고 우리 집처럼 편안한 문화·예술 공간을 만나본다.



Inspire the City
21c Museum Hotel Chicago

Design / Deborah Berke
Location / Chicago, United State
Area / 230,200㎡
Photograph / Julie Soefer

Focus on_호텔의 공용 공간을 미술관처럼 연출하고 거리로 개방해 도시 풍경을 바꾸었다.

문화·예술은 풍부한 영감과 함께 일상에 특별함을 수놓아 가치 있다. 코로나19로 여행을 떠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새로움을 찾고자 하는 이들은 낯선 장소를 탐색하고 비일상을 경험하기 위해 호텔을 찾는다. 그런 이유로 문화 클래스를 갖추고, 호텔 내에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을 추천하는 등 예술과 호텔을 연계한 공간이 각광받는다. 특히 21c Museum Hotel Chicago는 전 세계 예술을 테마로 하는 호텔 중 가장 큰 1만㎡ 규모의 전시 공간을 갖춰 예술을 적극적으로 접목한다. 시카고 거리 한복판에 자리한 이 호텔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예술을 도발적으로 드러냈다. 로비는 기존 벽돌 벽체를 철거하고 통유리를 시공해 내부 깊은 곳까지 거리로 투사한다. 내부는 선과 면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트랙 조명을 설치해 박물관 수준의 환경을 연출하고, 조각, 그림부터 사진, 비디오, 설치까지 다양한 작품을 전시해 현대 미술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아울러 감상을 해치지 않기 위해 가구는 최소한으로 매치하고 미니멀한 분위기를 구현했다. 

회의나 이벤트 등 가변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2층 공간 또한 예술 작품을 전시했는데, 슬래브를 뚫어 1층과 동선이 자연스레 흐른다. 여기에 각진 형태의 금색 계단을 시공해 이 또한 하나의 조각품처럼 보이도록 의도했다. 전시 공간과 대조적으로 연출한 객실 복도는 어두운 색조로 칠해 그윽한 무드를 담고자 했다. 객실은 밝고 통풍이 잘되게 조성하고 중서부 하늘과 미시간 호수의 물에서 가져온 그린, 블루 등 시원한 컬러 팔레트로 꾸몄으며, 아티스트와 협업한 디자인 가구를 배치하고 다양한 그림을 걸어 콘셉트를 이어간다.



Embrace with Wooden Ribbon
Random Art Space

Design / AIR architects
Location / Hangzhou, China
Area / 150㎡
Photograph / Hao Chen

Focus on_전시 공간과 상공간을 자유롭고 유연한 우드 패널을 활용해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예술은 어렵다. 그렇기에 예술을 일상으로 들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삶과 예술 사이의 연결성을 강조해야 한다. 최근 상공간에서는 연결고리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담아 예술을 받아들여 공간을 전개하는 시도가 계속된다. 작품에 앞서 친숙함을 조성하고 접근성을 높여 동선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는 등의 방법이 고려된다. 중국 항저우에 새로 문을 연 Random Art Space는 그 둘을 소재와 디자인 요소로 한층 긴밀하게 엮어낸 프로젝트다. 

중국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Random의 Random Art Space는 가벼운 스낵과 커피를 제공하는 카페 Ceremorning과 아티스트의 작품을 큐레이팅해 전시하는 공간 Random Play로 구성된다. 설계를 담당한 AIR architects는 건물에 하위 브랜드 두 개를 수직으로 배치했지만 콘셉트와 구조로 상호의존성을 높였다. 동일한 컬러 팔레트와 소재를 적용했는데, 특히 지속 가능성과 정서적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우드를 주요 소재로 선택했다. 중국 전통 건축 스타일을 반영한 건물 내부로 진입하면 가장 먼저 카페 영역을 마주하게 된다. 우드로 커다란 카운터를 조성하고 그 앞에 우드 막대로 오목한 곡선형 벽체를 제작했다. 벽체에 선반을 만들어 작품을 걸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서양의 건축 양식에서 영감받은 것으로 동양적 공간에 미묘한 변주를 불러일으킨다. 

곡선 흐름은 벽을 따라 2층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본격적인 전시 공간으로 발길을 이끈다. 거친 골조와 기둥이 두드러지는 2층은 한 면에 둥근 벽체를 마련하고 그외에는 물결형 우드를 감싸듯 연출했다. 천장은 우드 슬레이트 패널을 쌓듯이 제작해 다채로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예술적 감상을 풍성하게 이끈다. 여기에 벽면의 디스플레이 선반뿐 아니라 공중에 원형과 사각형의 랙을 달아 다채로운 디스플레이 환경을 완성한다.



Library next to Us
The Book Room

Design / Studi o Infinity
Location / Pune(MH), India
Area / 48.7㎡
Photograph / Hemant Patil

Focus on_주거 지역에 작고 아늑한 도서관을 만들어 독서 경험을 생활 속으로 들였다.

지식 공유를 추구하는 도서관은 많은 사람을 위한 공간인 만큼 힘이 들어간다. 널찍한 건물, 수십만 권에 달하는 장서, 음악과 미술 등 다양한 활동을 포괄하는 콘텐츠.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진 도서관은 책의 바다에 빠진 듯 특별한 공간 경험을 선사하지만 그만큼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규모가 크다 보니 생활 공간에서 동떨어져 있고 일부러 시간을 내 찾아가야 하는 장소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동형 도서관 같은 대안도 등장했지만 도서관의 의의는 책을 빌리는 데만 있지 않다. 책을 자유롭게 탐색하고 지식을 매개로 타인과 교류하는 경험이야말로 도서관의 본질이 아닐까. 

인도의 The Book Room은 마실 가듯 가볍게 들를 수 있는 소규모 도서관으로 독서 경험을 일상 속으로 끌어들여 주목할 만하다. 주차장을 도서관으로 재탄생시킨 The Book Room은 주택가 맞은편에 위치해 마을 사람이 방문하기 편리하다. 디자이너는 뛰어난 접근성을 바탕으로 누구나 편하게 책을 읽고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어 책에서 흥미를 느끼도록 했다. 1층과 2층을 터 층고가 높은 공간을 세 구역으로 나누고 중앙에 리셉션을 배치한 뒤 양옆에 독서 공간과 커뮤니티 공간을 계획해 도서관의 핵심 기능을 압축적으로 가져왔다. 커뮤니티 공간에 이용자 간 교류를 유도하는 공용 테이블을 배치했으며 밝은색 합판으로 제작한 테이블 가운데 식물을 심어 생기가 감돈다. 반대편에 위치한 독서 공간은 마음 가는 대로 앉을 수 있는 계단식 좌석을 계획해 자유로운 흐름을 부여했는데, 이 좌석이 벽을 넘어 정원으로 이어져 내외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외벽에 높은 아치형 유리창을 시공해 안을 드러낸 점도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다. 아치는 천장과 벽에 반복되며 톤 다운한 파스텔 컬러, 소박한 벽돌 바닥과 어우러져 한결 친근한 인상을 그린다.



Weaving an Culture
Maison826

Design / nuno capa | arquitecto
Location / Braga, Portugal
Area / 250㎡
Photograph / João Morgado

Focus on_문화 공간을 다양한 상공간과 오픈형 구조로 배치해 일상 속 공존을 이끌었다.

이제 공간에서 문화와 예술은 단순히 부가적인 요소가 아니다. 음악이 있는 펍이나 미술 작품을 걸어둔 레스토랑 등 장식으로 사용되었던 과거와 달리 독립된 객체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에 더욱 과감하게 통합되는 경향을 보이며 한층 높은 대중성을 획득하게 된다. Maison826은 다양한 상공간과 문화 공간을 한 곳에 엮은 프로젝트로 일상과 문화의 무던하고 자연스러운 공존을 보여준다. 

70년대 건물에 자리 잡은 Maison826은 수년 동안 폐쇄되었던 공간을 활용했는데, 이곳에 구성된 문화 공간과 상공간은 진입점을 공유하며 시각적 관계성을 갖는다. 하나의공간을 4개 레벨로 나누고 각기 다른 성격을 부여해, 지하는 문화와 음악 공간, 1층은 카운터, 2층은 헤어 살롱, 3층은 컨셉스토어로 구성했다. 각층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스킵 플로어로 0.5층씩 상승하도록 구성했으며, 계단은 난간 없이 유리 날판만 세워 시각적으로 시원하며 모던한 분위기를 더한다. 또 층마다 블랙 컬러의 레일로 감싸고 볼드한 주름이 진 커튼을 설치해 유동적인 공간 개폐가 가능하다. 공간은 전체적으로 무채색을 유지하며 옅은 갈색 자작나무로 가구를 제작해 통일감을 준다. 이 중 문화와 음악 공간은 콘크리트로 마감하고 오랜 시간의 흔적을 강조해 동굴처럼 연출했으며, 공간을 넓게 비우고 한쪽에 피아노, 드럼 등 악기를 배치했다. 아울러 스폿 조명만으로 무대를 구분하고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빈티지 캐비닛을 마련하는 등 공간의 가능성을 열어 다양한 문화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The Rendezvous with Art
캐비넷클럽 하우스

Design / 어반플레이
Construction / 디자인스타트
Location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로
Area / 689.3㎡
Photograph / 이지훈, 김한준(표기된 사진 외)

Focus on_예술 요소를 사람들에게 친밀한 공간인 집, 카페와 결합해 거리감을 좁혔다.

일반인이 예술에 대해 품는 감정은 양가적이다. 예술을 향유하고 싶어 하지만 때로는 난해하고 범접할 수 없는 영역처럼 느끼기도 한다. 일상에서 자주 찾는 장소인 카페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요소를 엮은 복합 문화 공간은 낯선 대상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누그러뜨려 사람들이 예술을 친근하게 인식하도록 돕는다. 최근 연희동에 등장한 캐비넷클럽 하우스는 가장 친숙한 공간인 집에 실험적예술 콘텐츠를 녹여 예술 공간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 친구의 집에 놀러간 기분을 자아낸다.

캐비넷클럽 하우스는 도시 문화 콘텐츠 기업 어반플레이가 진행하는 활동인 캐비넷클럽의 쇼룸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연희동의 단독주택을 복합 문화 공간으로 개조했는데, 주택의 독특한 원형 창문과 시멘트 구조물을 그대로 살리고 기존의 화려한 인테리어를 포인트로 활용하면서 하얀색으로 배경을 잡아주어 연희동 특유의 느낌을 예술적으로 풀어냈다. 골목길에 자리한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주택의 외관을 고스란히 간직한 3층 건물을 만나게 된다. 1층에는 라디오 프로그램과 카페를 결합한 유튜브 콘텐츠 보라다방의 공간이 있으며 고풍스러운 나무 벽으로 감싼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아트 갤러리가 나타난다. 인더스트리얼한 천장과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는 비디오, 사진, 그래픽 등 폭넓은 예술을 경험할 수 있다. 

3층의 페이퍼 샵은 캐비넷클럽과 협업하는 작가들의 상품을 판매하는데 벽 한쪽을 캐비닛으로 채우고 판매용 작품을 보관해 브랜드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페이퍼 샵과 이웃한 카페 오디너리 핏은 실내뿐 아니라 테라스에도 좌석을 마련해 연희동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Livingroom on the Road
Microlibrary Warak Kayu

Design / SHAU Indonesia·Florian Heinzelmann, Daliana Suryawinata, Rizki Maulid Supratman, Muhammad Ichsan, Alfian Reza Almadjid,
Multazam Akbar Junaedi
Location / Taman Kasmaran, Semarang, Central Java, Indonesia
Area / 182㎡
Photograph / KIE & team

Focus on_활짝 열린 구조에 여러 문화 기능을 부여해 문화가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중심축이 됐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골목 한편이나 커다란 나무 아래 평상이 있었다. 나무 그늘이 드리운 평상은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는 자리였고, 가볍게 앉은 사람들은 어느새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었다. 지역 사회의 유대 관계가 단절된 오늘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문화 시설은 커뮤니티를 회복하는 구심점이 되어준다. 인도네시아에 자리한 Microlibrary Warak Kayu는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위치에 개방적 구조의 건물을 짓고 다양한 문화 기능을 부여한 프로젝트로 일상과 문화의 접점을 만들어 삶을 풍요롭게 이끌 뿐 아니라 사람들을 한자리로 불러 모아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Microlibrary Warak Kayu는 식당, 카페, 병원, 초등학교 등으로 둘러싸여 다양한 사람이 오가는 자리에 들어서 있다. 아이들이 언제든 책을 만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도서관을 세우고 여러 문화 요소를 접목했는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문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든 점이 인상적이다. 디자이너는 우연한 만남과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지역 전통 건축 Rumah Panggung을 차용했다. 수상 가옥에서 흔히 보이는 이 양식은 기둥 위에 집을 얹은 형태인데, 도서관을 위로 올리고 1층은 기둥 구조만 남긴 채 낮은 화단을 둘러 길을 걷던 사람이 자연스레 공간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2층 역시 마름모꼴을 중첩한 듯한 파사드를 둘러 빛과 바람이 드나드는 공간이 완성됐다. 파사드는 독일 건설 시스템 Zollinger Bauweise에 현지 신화 캐릭터인 Warak Ngendog을 결합해 디자인했으며, 낮에는 강한 햇빛을 적절히 차단해 책 읽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다. 작은 공원 같은 1층은 계단식 좌석을 배치해 여러 사람이 영화를 보거나 워크숍을 할 수 있고 나무 그네로 유희 요소도 더했다. 도서관은 책상과 서가를 구비하는 한편 바닥 일부에 그물을 설치해 아이들이 누워서 쉬거나 책을 읽으면서 1층에 있는 사람과 소통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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