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My Life - 현대인의 책 향유법 (2019.9)

Read My Life
현대인의 책 향유법

취재 신은지, 한성옥

책이 변치 않는 아날로그의 가치를 내재한다면 이를 담아내는 공간은 어떤 가치를 지닌 것일까.
현대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녹진히 담아낸 책의 공간을 펼친다면 우리가 어떤 시대를 읽어나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공간의 귀퉁이를 넘겨 삶에 짜릿한 자극을 전하는 활자의 향연을 만끽해보자.

책의 세계는 아직 건재하다. 머지않아 종이책의 종말이 도래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 독창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난다고 했던가. 물에 젖지 않는 워터프루프 북부터 컵받침으로 활용 가능한 소형 책자, 메모지를 삽입한 다이어리 겸 시집까지 기존 형식을 파괴하는 창의적 실험이 이루어진다. 출판 업계의 불황을 딛고 나타난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는 책의 형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책을 주제로 한 공간 역시 이전과 차별화된 다채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복합 라이프스타일 서점 아크앤북, 레트로 테마의 초대형 헌책방 서울책보고뿐 아니라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는 책 애호가를 위한 서점 등신선한 콘셉트를 선사하는 공간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흐름은 일반 대중이 아닌 명료한 독서 취향을 지닌 소비자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에 소규모 독립 서점이 인기를 끌면서 대형 서점에서는 찾기 어려웠던 독특한 참여형 콘텐츠나 개성적인 감성을 집약한 큐레이션 프로그램이 공간에 녹아든다. 이처럼 색다른 시스템을 장착한 책의 공간은 그 어느 때보다 참신한 형태로 현대인의 다채로운 책 향유법을 보여준다. 책을 통해 마음으로 이야기를 담아내고, 책이 깃든 공간을 통해 온 몸으로 이야기를 누리는 것. 책의 곁을 떠날 수 없게 만드는 매혹적인 공간과 함께라면 삶의 이야기는 더욱 감미로워질 테다.



 Theme 1. Beyond the Pages 
한권의 서점

Design / 지랩
Construct / 그리즈
Location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9길 24
Area / 11.3㎡
Photograph / ARCFACTORY·박기훈

책에 깃든 이야기에 깊숙이 파묻히다 보면, 마음속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진다. 책을 사랑하는 이라면 한 번쯤 꿈꿔봤을 터다. 손에 쥔 책 속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는 재미난 상상을. 한적한 서촌에 자리해 동네 라운지로 역할 하는 한권의 서점은 책 속의 세계를 현실에 풀어낸 독특한 콘셉트로 흥미로운 여정을 선사한다. 책 내용을 공간에 녹여 입체적으로 나타내는데, 매달 한 단어를 선정해 이와 어울리는 한 권의 책을 재해석하고 하나의 경험으로 구성한다. 마치 전시를 열 듯 책의 내용을 디스플레이로 다채롭게 표현할 뿐 아니라 서촌과 이 책방을 찾는 이들을 환대하는 참여형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특히 파인스테이 예약 플랫폼 스테이폴리오가 기획하고 전문 디자인 그룹 지랩이 협업해 탄생한 만큼 지역적 특성과 한국적 정서를 살린 감성적인 공간이 돋보인다. 옛 그림 책가도를 모티브로 가구를 제작해 차분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이는 3평 남짓한 소담한 공간에 밀도 높은 존재감을 부여한다. 어두운 톤의 우드로 벽면을 마감해 자연스레 전시 집중도를 높일 뿐 아니라 매 주제에 맞는 음악과 향을 내어 오감 가득 공간을 경험하도록 의도했다. 더 나아가 서촌의 느림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계획됨으로써 책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사람을 넘어 지역까지 확장하는 의미 깊은 공간으로 작용한다.



 Theme 2. For the Special Target 
엄마의, 서재

Design / (주)일룸 사업기획팀 공간파트·공현주(인테리어), 이선영(사인), 경진수(VM)
Location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로 148 1층
Area / 171.9㎡
Photograph / 스튜디오 원더풀·송유섭

육아와 가사를 도맡아 하느라 정신없는 엄마들은 자기 계발은커녕 취미와 휴식조차 사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바쁘고 고된 와중에도 꿈을 잊지 않고 있다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최근 서울 연희동에 오픈한 엄마의, 서재는 가구 브랜드 (주)일룸이 열심히 달려온 엄마가 자신을 되찾는 시간을 가지도록 조성한 공간이다. (주)일룸은 엄마들이 자기 계발을 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체로 책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 큐레이션을 거친 도서 2천여 권을 구비한 공간을 마련했다. 아울러 오롯이 독서와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내부를 다채롭게 구성해 자신에게 집중하는 데 최적화된 환경을 완성했다.
짙은 그레이 톤 타일을 사용해 모던한 느낌을 자아내는 파사드는 통유리창을 매치해 내부와 외부의 연결성을 유도했다. 입구로 들어서면 정면에 메인 큐레이션 서가가 자리한다. 삼성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에서 책방 대표로 변신한 최인아 대표가 엄마의 취향과 관심사를 반영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도서를 직접 엄선했다. 서가 좌측에는 햇살을 받으며 독서와 개인 작업을 할 수 있도록 12인용 대형 테이블을 배치했다. 등 좌판이 유연한 ‘세타플러스 패브릭 의자’ 를 배치하고 은은한 조명을 제공해 편안함을 배가한 점이 돋보인다. 큐레이션 서가 뒤편에 위치한 소파 공간에는 집에 있는 것처럼 편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좌방석이 넓고 낮아 착석감이 뛰어나며 등받이 쿠션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소파를 배치했다. 측면 벽에는 독서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1인용 책상까지 세심하게 구성했다. 소파 공간 뒤의 이동식 서가를 밀면 안정감있고 독립적으로 완성된 혼자만의 서재가 나타난다. 이동식 서가를 블라인드처럼 활용하고, 각도 조절이 자유로운 1인용 리클라이너 소파 ‘볼케’ 를 놓아 독서와 휴식의 질을 끌어올렸다. 책 관련 참여형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강연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한편 가장 안쪽에는 소모임실을 마련해 엄마들이 독서 토론을 비롯한 다양한 모임을 진행하며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했다.



 Theme 3. Life with Neighborhood 
Blue Heart

Design / Wutopia Lab·YU Ting, Liran SUN, LI Haoyang, VGC Weigaocheng Design, Qianmo Interior Design
Location / Chengdu, Sichuan, China
Area / 345㎡
Photograph / CreatAR Images

현대 주거 형태는 한정적인 면적에 다수의 가구가 밀집한 주택 단지로 대표된다. 한국에 아파트가 있듯 중국에서는 Xiao Qu라 불리는 주택 단지가 보편적이다. 높은 공간 효율성을 추구하는 Xiao Qu는 주민들의 교류가 결여되는 폐쇄성을 띠는데, Wutopia Lab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 거주민의 거실을 구상했고, 그 결과 청두의 5th Community Go Mall에 Blue Heart를 만들었다. Youkong Living Room으로 설명되는 이 공간은 가정과 도시의 완충 지대로 주민이 휴식을 취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교류의 장이다. 독서 공간을 중심으로 택배 수령, 주방, 모임 등 다양한 서비스 기능을 배치해 주민들의 방문율을 끌어올렸다. 메시형 알루미늄 패널을 반개방형으로 시공해 개방감을 선사하는 파사드 안쪽으로 들어가면 하얀 책장으로 채워진 공간이 드러난다. 내부는 변화가 많은 도시 특성을 반영해 구성원이 달라질 때마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모듈형 공간으로 기획됐다. 크게 Service Box, Social Box, Female Box로 구성되는데, 공간마다 다른 기능을 부여해 주민의 다양한 니즈를 반영하고, 실용적이면서 가변적이고 조화로운 거실을 그린다. Service Box는 택배 수령 공간, Social Box는 모임과 독서 공간, Female Box는 주방과 어린이 공간 역할을 수행하며, 지역 구성원 대다수가 여성과 어린이이기 때문에 Female Box가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각 공간은 벽면을 제거한 거대한 책장으로 구획해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연출하면서도 내부와 외부의 소통을 유도했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선명한 클라인 블루 컬러의 나선형 계단이 시각적 임팩트를 전하고, 아이들이 독서를 즐기는 리딩룸은 부드러운 티파니 블루 컬러로 칠해 리듬감 있게 연출했다.



 Theme 4. The Soul of the Region 
Kaeng Krachan Library

Design / Junsekino Architect and Design
Location / Phetchaburi, Thailand
Area / 200㎡
Photograph / Spaceshift Studio

은은한 햇살 아래 푸른 정경이 펼쳐진 들판. 그리고 피부를 시원하게 스치는 바람을 만끽하며, 기분 좋은 적막 속에서 여유로이 책장을 넘기는 순간. 한가로운 풍경 속에서 즐기는 독서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이있는 시간과 행복을 선사한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Kaeng Krachan Library는 태국의 한 시골 마을에 위치한 공간으로, 펫차부리(Phetchaburi) 지방의 평화로운 자연 요소를 살린 도서관이다.
지역 사회에 꼭 맞춘 공공 도서관을 기획하려는 의도에 따라, 싱그러운 주변 풍경을 건물에 적극 들일 뿐 아니라 마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재료로 친환경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특히 독서, 강연, 연구 등 모든 주민이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적인 평면으로 계획했는데, 아담한 마을 도서관을 관리하는 사서가 한 명뿐이므로 쉽게 관리할 수 있도록 직관적인 구조를 꾀한 점이 인상적이다.
별도의 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모든 방향에 오픈된 단층 도서관은 거대한 처마를 지녀 공원 파고라를 연상케 하며, 외부와 자연스레 녹아드는 열린 외관을 통해 지역 주민의 친근감을 강화한다. 이러한 구조는 채광과 환기를 극대화하면서도 때때로 폭우가 쏟아지는 기후 특성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다. 보이드와 솔리드가 조화 이룬 건물은 사서 공간을 중심으로 책을 보관하는 서고 부스 4개를 사방에 배치해 유기적인 동선을 나타낸다. 각 부스는 외부 통로로 연결되며 공간 사이마다 형성된 보이드 영역에 책상과 의자를 배치해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테라스를 조성했다. 아울러 전체를 덮는 거대한 차양과 도서실의 모든 벽면은 반투명 패널로 이루어져 있는데, 외부의 빛을 조명으로 활용해 에너지를 절감한다. 여기에 각 실과 주요 골조의 마감재로 지역성이 도드라지는 강철, 목재 등이 어우러져 다양한 재료가 외부 환경과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고 결합하는 흥미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Theme 5. The Scenery with Books 
Yan Ji You Flagship Store in K11 Guangzhou

Design / Karv One Design·Kyle Chan(Director), Derek Ng, Jacky Wan, Leon Zhang, Carol Chan, Derrick Leung(Design team)
Location / K11 Shopping Center B2, No. 6 Zhujiang East Road, Tianhe District, Guangzhou, China
Area / 2,900㎡
Photograph / Dick.L

언어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같은 단어라도 삶의 양상이 바뀌면서 의미가 변화하는 것이다. 어쩌면 서점이라는 단어도 그중 하나가 되지않을까? 현재 서점의 정의는 책을 갖추어놓고 팔거나 사는 가게이지만 최근 서점은 이런 단순한 정의에 가둬두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오프라인 서점의 공간 활용이다. 청두에서 시작한 중국의 프랜차이즈 서점 Yan Ji You는 책을 판매하는 상점에서 책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복합 문화 공간이 된 케이스다. 특히 광저우 지점인 Yan Ji You Flagship Store in K11 Guangzhou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공간에 특별한 스토리를 부여해 그 자체만으로도 경험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장소로 거듭났다. 디자인을 맡은 Karv One Design은 블랙홀과 중력장이라는 테마로 서점을 기획하면서 Yan Ji You(言几又)라는 서점 이름이 設(베풀 설)의 파자라는 데 착안해 암호를 활용해 콘셉트를 심화했다.

묵직한 블랙 컬러를 입힌 파사드 한가운데 밝게 빛나는 내부 공간은 블랙홀을 연상시키며 공간 콘셉트를 암시한다. 빛에 빨려 들어가듯 안쪽으로 향하면 우주를 은유한 공간을 탐험하는 여행이 시작된다. 미스틱 블랙 컬러를 주조로 사용하고 스테인리스 스틸과 블랙 미러 등을 시공해 공간 전체에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며, 서가와 바닥에는 부드러운 우드 톤을 입히고 높은 조도의 조명을 사용해 명암의 균형을 잡았다. LED 디스플레이와 블랙 미러를 매치한 Podium 영역은 블랙홀, 중력장, 달 등 테마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공간 속 퍼즐을 풀어나갈 힌트를 제시한다. LED 디스플레이 앞 바닥에 시공된 검은색 원판에 26개의 눈금이 시계처럼 원형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26개의 알파벳을 의미하며 이 힌트를 통해 서점의 서가와 벽 등에 삽입된 퍼즐을 풀 수 있다. 방문객들은 서점에서 단순히 책만사는 것이 아니라 퍼즐을 풀어나가며 탐험을 하고, 이를 통해 공간과 유대 관계를 맺으며 자신만의 여정을 완성한다. 한편에는 천장까지 뻗은 거대한 서가로 둘러싸인 Art 영역이 자리한다. 서가에 마련된 예술의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알록달록한 책 오브제와 싱그러운 잔디, 생생하게 재현된 말 모형을 마주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이 개최돼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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